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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김성규 두번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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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김성규의 두번째 시집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에는 제목과 달리 피안이 없다. 재난 가득한 현실과 맞서며 결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희망'이라는 차가운 형이상학을 염원하는 대신 지옥속으로 순순히 빠져든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단테의 신곡이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얘기라면 시인은 오히려 "가난이 재난을 찾아가"고 "재난이 가난을 찾아내"(해열)출구 없는 지옥을 마다하지 않는다.
"(...) 어머니 품에 안겨 잠들 때마다 언제 얼음궁정으로 돌아가냐 물었지. 어머니는 웃는 낯으로 말했네 예언자가 사라진 궁전에서는 모두 숯덩어리 같은 울음을 삼키며 살아야한다고, 울음을 멈추지 말고 또다른 예언자를 기다려야한다고......흙을 삼키며 사람들이 노래 불렀네.

대기권 위로 솟아오른 빌딩들이 있었네/밤마다 베고 자던 구름에도 세금을 매기는 자가 있었네/지상에 세워진 가장 빛나던 궁전들이 있었네/겨울이 끝나고 다시" (얼음궁전)

그가 말하는 지옥은 현실이다. "밤마다 베고 자던 구름에도 세금을 매기는" 세상 한 복판에서 그의 세계관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데 있지는 않다.
"(...) 눈송이가 녹아 흐르는 시간만큼 심문관은 의무를 다할 것이며, 이 세상에 심판 없는 시간만큼 나무들은 자라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규칙 없는 봄이 끝나면 정원사는 가위를 들고 하늘로 솟구칠 것이다.

스스로를 형틀에 매달고 살아가려는 망명자들/구들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햇빛속에서 신음하던 나뭇가지가 땅바닥에 떨어진다/오늘 또 한명의 망명자가 체포되었다"(심문관)

망명자와 심문관의 불길한 파국만 있는 세상에서 '마법사'나 '예언자'의 말은 "자신이 세긴 글씨가 상처인 줄"(방언) 모른다. 망명자들은 "끝까지 절름거리며 떠돌아" 다니거나 "자고 나면 병이 깊어"(해열) "스스로 베어지길 기다리는" 운명이다.

시인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구원과 피안의 세계도 마련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진보의 프로파간다도 거부한다. 그래서 차라리 재난이 숭고하고, 폐허의 가시밭에서 함성을 내지른다.

"삼촌은 도표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마을 전체가 알 수 없는 땅으로 날아가는거야. 신난다 ! 동생이 소리쳤어요. 하늘을 보고 기도합시다 하수관을 타고 동내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됐어요 모두들 넋을 놓고 하늘을 봤어요 이곳이 곧 하늘이란다 삼촌은 컴퍼스를 돌리며 말했어요
(...) 바느질을 멈춘 어머니, 몸을 말고 자는 아버지, 지붕 위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동생, 기도하는 누나와 잠에서 막 깬 나는 책상에서 볼펜을 놓지 않는 삼촌을 바라봤어요. 재앙이 끝나면 우리는 어디로 떨어질까요" (폭풍속으로의 긴 여행)

내면의 절망, 체념에 대한 진단은 없다. 시인이 내린 처방은 세계가 재난이 존재하거나 재난 안에 거주하는 삶이 현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통한 게 아니다. 불행으로 점철된 자체를 저주하지 않으며 구원이라는 관념에 허우적 거릴 것도 없다. 싸우면 그 뿐이다. 재앙과 불행을 근본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보면 "재앙처럼, 축복처럼 눈송이가 쏟아져"(내일) 들어온다. 시인에게는 희망의 재단을 쌓는 것 또한 고통스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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