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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인… "삶의 깊이 재는 청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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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9월28일. 진은영 시인(42)을 만나기 위해 이화여대 진선미관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촘촘한 계단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억수로. 가을의 깊이를 재기 위한 비였을까. 진 시인은 최근 '훔쳐가는 노래'를 내놓았다. 지난 2008년 '우리는 매일매일' 이후 4년 만이다. 이화여대 철학과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시 쓰는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다른 시인에 비해 쓰는 속도가 느리다."
담백하고 짧은 설명.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진 시인은 달라진 삶의 풍경이 낯설다. 그는 "2012년 강남 출신의 신흥세대 아이들을 대학에서 만나면 80~90년대와 다른 풍경과 마주친다"고 말했다. 삶의 깊이를 재는 학생보다 학점의 깊이를 따지는 제자들이 많다. 스무 살 자신의 삶이 의미한 것인지, 무의미한 것인지 알기 전에 '스펙' 쌓기에 뛰어든 학생들. 낯설면서 연민의 감정이 든다.

"아무도 스무 살이 이토록 무의미하다는 걸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하는 시' 중에서)

낯선 풍경은 70~80년대 지식인과 21세기 지식인에게로 옮아왔다. 그는 "70~80년대에는 지식인이 앞장서 폭로하지 않으면 진실이 묻히는 시대였다"며 "지금의 지신인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삶과 환경을 만나는 존재인데 리딩그룹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 시인은 '어떤 인생이, 어떤 시작이' 아름다운 것인지 스스로 묻고 있다. 21세기 아름다움은 타인과 소통하면서 '삶의 깊이'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시에서 그런 자세는 확인된다.
"당신의 삶은 정말 주머니들로 가득한 옷 같소/얼마나 많은 슬픔/얼마나 많은 기쁨/얼마나 많은 분노/얼마나 많은 영혼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지."('Bucket List' 중에서)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노동자를 두고 쓴 시이다. 21세기 지식인은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담겨져 있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영혼'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시인은 학생 청년들에게도 주문한다. "자신의 주머니에 다양한 경험을 채우고 안 해 본 것을 넓혀 나가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그 여유로 '세상의 절반'을 느껴보라고.

"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 중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두고는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있다'중에서)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에 떠밀려 획일화되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있을 뿐인 때가 있는' 순간을 기억하고 누릴 수 있는 청년들의 자세가 보고 싶단다. 순간의 다양성이 모여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면 삶의 깊이가 깊지 않겠느냐는 다짐.

그리고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그녀와 손잡고 나가겠습니다."('거리로' 전문)

'최승자 시인의 후계자'로 평가받고 있는 진은영. 2003년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과 2008년 '우리는 매일매일', 올해 '훔쳐가는 노래' 세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그의 시는 '한땀 한땀, 천천히 스며드는' 깊이를 강조하는 울림 속에 존재한다. 1970년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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