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는 이 시한폭탄이 터져 버린 상황을 추리소설의 틀을 빌려 풀어낸다. 휴직중인 형사 혼마 뼞스케는 친척 청년에게 사라진 약혼자 세키네 쇼코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승낙한 혼마는 곧 세키네 쇼코가 '가짜'라는 것을 깨닫고 당혹에 빠진다. 진짜 세키네 쇼코는 사라졌고, 혼마가 뒤쫓는 여성은 세키네 쇼코의 삶을 훔친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훔친 범죄자 역시 현대 소비사회의 덫에 걸린 피해자다. 작가는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누구나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날같은 현대 사회에서 신용카드나 대출 때문에 파산까지 내몰린 사람은 오히려 상당히 고지식하고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아요.(148쪽)" 사건의 해결 과정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영역을 넘어 현대사회의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1993년작이지만 소설 속의 상황은 지금 한국 사회와 다르지 않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근 국내에서의 영화화와 맞물려 재출간된 작품으로 기존 번역본에서 빠지거나 축약된 부분을 살려 원고지 500매 정도의 분량을 추가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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