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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시험 전날, '시험지' 사러 다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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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 전날, 종이값은 늘 폭등
답안지는 '9등급'으로 점수 내서 당일 채점 및 공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과거시험 답안지 모습. 조선시대 과거시험 전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답안지로 쓸 종이를 마련, 등록하는 일이었다.(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과거시험 답안지 모습. 조선시대 과거시험 전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답안지로 쓸 종이를 마련, 등록하는 일이었다.(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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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우리나라 수험생들에게 수능시험 전날은 예비소집이 있는 날로 수험표를 지급받고, 다음날 수능을 치를 시험장을 직접 방문, 확인하는 날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과거시험 전날은 이처럼 평온하게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고 알려져있다. 과거시험 전날은 다음날 답안제출용으로 쓸 '시험지'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구입, 미리 시험지로 등록까지 마쳐야하는 힘든 날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수록된 과거시험 절차에 따르면, 과거시험 응시자는 꽤 복잡한 등록과정을 거치게 돼있다. 응시자는 시험 전날 '녹명(錄名)'이라 하여 응시자로 등록을 해야하는데, 이때 자신의 성명과 본관, 거주지와 함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성명과 관직이 기재된 '사조단자(四祖單子)'라는 것을 제출해야한다. 여기에 6품 이상의 현직관료가 서명한 신원보증서인 '보단자(保單子)'도 내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과거시험장에서 쓸 시험지인 '시지(試紙)'를 미리 사서 녹명소에 응시자로 등록하면서 함께 직인을 받아두는 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친람하는 특별한 시험이 아니고서는 오늘날 수능처럼 국가에서 시험지를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응시자 개인이 자신이 쓸 종이를 가지고 들어가야했다. 시험지는 처음에는 별도 규격이 없다가 이 역시 응시자마다 서로 고급지에 쓰려고 경쟁이 붙기 시작하자 아예 국가에서 규격을 지정하게 된다.
과거시험에 흔히 쓰던 종이인 도련지는 붓이 매끄럽게 잘 나가도록 다듬이질로 종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 종이였다. 시험 전에 답안지에 다듬이질을 잘 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사진=한국민속대백과사전)

과거시험에 흔히 쓰던 종이인 도련지는 붓이 매끄럽게 잘 나가도록 다듬이질로 종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든 종이였다. 시험 전에 답안지에 다듬이질을 잘 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사진=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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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과거시험인 식년시·증광시·별시 등의 초시에서는 '도련지(搗鍊紙)'라는 종이를 썼다고 한다. 이 종이는 미리 종이 표면에 매끄럽게 다듬이질을 해서 붓이 잘 미끄러지도록 만든 고급종이다. 16세기부터 생긴 규정에 따르면, 종이 길이는 가로 세로 약 83cm이며, 시험에 따라 3장 내지는 4장을 이어붙여 쓰도록 되어있었다고 한다. 완전 논술시험이던 과거시험은 각 시험마다 쓰는 분량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사용할 종이 분량도 미리 지정해줬었다고 한다.

시험 전날이 되면 시험장 근처 시장은 종이가 없어 난리가 나곤 했다고 전해진다. 1차 시험인 초시의 경우에는, 본거지와 가장 가까운 지역의 큰 도시에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먼 고장에서 온 지방 선비들은 미리 시험지를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양에서는 과거시험이 있는 날에는 시전의 종이값이 20배 이상 뛰기도 했다. 어렵게 얻은 시험지는 또 수천명의 경쟁을 뚫고 녹명소에 가서 인증을 받아야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과 싸움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김홍도의 화첩평생도 중에 나온 과거시험장의 모습. 과거시험은 채점과정의 부정을 막기 위해 당일채점, 공시를 원칙으로 하다보니 심사위원들이 300장 이상을 채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로인해 손이 빠른 대필자를 고용해 팀으로 시험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사진=문화재청)

김홍도의 화첩평생도 중에 나온 과거시험장의 모습. 과거시험은 채점과정의 부정을 막기 위해 당일채점, 공시를 원칙으로 하다보니 심사위원들이 300장 이상을 채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로인해 손이 빠른 대필자를 고용해 팀으로 시험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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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당일이 되면, 어렵게 구한 답안지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채워나가는게 관건이 되곤 했다. 과거시험은 특히 1차 지방 향시의 경우에는 부정을 막고자 당일 채점해서 점수를 공지해야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인 시관(試官)들은 보통 선착순으로 제출된 300장까지만 채점하고 나머지는 아예 보질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돈많은 집안 출신 응시생들의 경우에는 '사수(寫手)'라 불리는 대필자를 고용해 빨리 제출하도록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제출된 답안지는 시관들이 채점했고, 오늘날 수능처럼 등급을 나눠 점수를 냈고, 이를 통해 합격자를 정했다. 등급은 상(上), 중(中), 하(下), 이상(二上), 이중(二中), 이하(二下), 삼상(三上), 삼중(三中), 삼하(三下)의 총 9등급으로 오늘날 수능 등급과 유사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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