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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트렌드]입맛 없다는 시니어 파고드는 日 식품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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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트렌드]입맛 없다는 시니어 파고드는 日 식품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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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란 책을 읽었다.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던 작가가 병으로 엄마를 잃은 후 겪는, 한국 음식에 얽힌 사랑 얘기가 담겼다. 책을 보면서 내내 ‘고향의 맛’ ‘집밥’, 어렸을 때 먹던 것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과 연결돼 있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인사말로 ‘밥 먹었어?’ ‘언제 밥이나 한 끼 같이 할까?’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은 ‘먹방(먹는 방송)’을 전 세계에 전파한 나라다.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결국 제대로, 잘 먹는 것이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린 돌봄 분야 박람회를 둘러보며 먹는 것은 개인의 식습관과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산업적·사회적 인프라로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도쿄 빅사이트란 전시장에서 3일간 진행된 행사에 첫째날 통역과 함께 사전답사차 갔고, 마지막날에 15명 단체와 함께 방문했다. 통역은 15분 둘러보더니 더 볼 것이 없단다. 필자는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겠던데, 사람이 관심분야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만큼 세밀하게 봐야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요양시설 관계자들이 많이 보여서 우리네 돌봄 영역에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전시장은 두 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위층에는 휠체어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실어다주는 미니 봉고차, 간호사와 간병인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도구들, 각종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한 모니터링 시스템, 목욕을 편리하게 돕는 욕조 등이 배치됐다. 아래층에는 케어 푸드 위주로 구성됐다. 노화의 정도에 따라 불편을 겪는 부분이 증가하게 되는데,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식품들과 조리 도구가 있었다. 구강 관리 제품들도 있었다.

시니어 비즈니스 중 시장이 가장 큰 분야는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먹거리다. 소비자의 구매 빈도나 필요성, 취향 등에서 종합적으로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특히 후기고령자(75세 이상이거나 일정한 장애가 있는 65세 이상)가 많은 일본은 만성질환의 하나로 음식섭취장애가 우리보다 먼저 심각한 문제가 됐다. 따라서 후기고령자들도 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상품들이 출시됐는데, 일반 전시보다 업계 사람들을 위한 전시이다 보니 현장에서 실제 푸짐하게 맛도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전통 브랜드에서부터 신생 스타트업까지, 알약 형태 영양제부터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생선조림 형태까지 그야말로 폭이 넓고도 깊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요양시설에 설치할 수 있는 자판기였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점성도(묽고 진한 정도)를 고르면 최적화한 식품이 컵에 채워져 자판기 믹스커피 나오듯 뽑힌다. 구독서비스를 통해 월 10만원대 미만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데, 건강 정도에 따라 묽기까지 고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놀라웠다. 단 일반인 입장에서 맛과 질감은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쉽게 목에 넘길 수 있는 젤리류, 푸딩류가 눈에 띄었고 가시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한 먹기 편한 생선요리도 있었다. 마시는 음료 형태의 제품도 무척 많았다. 한 예로, 야쿠르트는 작은 부스인데도 시음할 때 제품을 통째로 줬다. 옆 부스의 주스업체보다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앙꼬의 나라 일본답게 팥 종류도 다양했다. 이왕 먹는 거면 적게 먹더라도 제대로, 맛있게 먹겠다는 수요에 맞춰 일반 제품과 같지만 훨씬 작게 만든 디저트들도 있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기능과 모양(시각)에 집중된 시니어 먹거리가 이제 감정적인 만족감을 고려하는 단계로 일부 진화하고 있었다. 요양시설에 필요한 단체형 조리기구, 아이들 식기구처럼 들고 먹을 때 가볍지만 모양은 어른용이랑 똑같은 그릇 등이 있었다. 식단, 식자재 기업까지 참가했다. 전반적으로 식품 기술이 대단했다.


우리나라도 ‘먹기 싫다’ ‘식욕이 없다’는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다. 당뇨약, 고혈압약 등 수많은 약을 복용하다 보면 부작용으로 식욕감소가 나타나기도 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식이제한을 하다 입맛이 떨어지기도 한다. 치아가 약해지거나 임플란트로 대체한 후 저작(咀嚼·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기) 기능이 떨어져 죽 같은 유동식만 먹다 보면 힘에 부친다. 스스로 ‘삼킴·섭식장애’나 입마름 증상을 자각하더라도 일시적인 것으로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래라 하더라도 건강 상태의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 노화에 따라 크게 달라져 직접 겪어보지 않은 주변인들에겐, 특히 젊은 날 배고픔을 겪고 자란 시니어들에겐 공감하기 어렵고 어린이 투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요양시설에서 식사를 잘 못 하는 노인들은 심각한 문제다. 일단 잘 먹지 못하는 것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삼킴장애나 저작 이슈가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나온 것이 ‘케어 푸드(Care Food)’다. 음식물 섭취와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된 식품을 말한다. 주로 고령층이 대상이지만 환자나 영양소가 부족한 사람들 외에도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젊은층까지 포함되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번 돌봄 산업 전시회에서 접한 다양한 먹거리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한국 케어 푸드 시장 규모는 2020년 2조원에서 2025년 3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치유밥상, 정밀영양, 맞춤형 비타민제 등도 케어 푸드에 큰 범주에서 포함되는데, 이에 대한 연구와 투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오래 산다는 것이 인류에게 ‘기회’ 측면에서 축복이라면, 잘 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숙제이자 고통이다. 남의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지 말고 힘껏 살아야 한다는 옛 작가의 말을 떠오른다. 일본 시장에서 시니어가 잘 먹기 위한 기술들과 제품군을 살펴보니 미래 먹거리 경쟁에는 국경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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