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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대처' 트러스의 일장춘몽? [글로벌포커스]

최종수정 2022.10.04 11:13 기사입력 2022.10.03 12:38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사진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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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의 '제2의 대처'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트러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삐걱거리며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러스 정부가 영국 경제를 살리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감세 정책은 파운드화 가치를 사상 최저로 떨어뜨리며 역풍 논란을 초래했다. 영국의 최대 우방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트러스의 감세 정책이 탐탁지 않은 듯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에너지 위기 해법으로 발표한 셰일가스 프래킹 금지 해제는 당내 반발을 불러와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12년 넘게 유지한 정권을 노동당에 내줄 것이라는 위기감은 커졌다.

결국 트러스 정부는 버밍엄에서 열린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 이틀째인 3일 감세안 중 최고 소득세율을 45%에서 40%로 인하하는 방안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당내 반발을 일부 수용한 모양새지만 핵심 경제 공약을 철회하면서 트러스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감세안 헛발질'…파운드 급락

지난달 26일 파운드·달러 환율이 한때 파운드당 1.035달러를 기록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하루 만에 5% 가까이 급락하며 사상 최저로 떨어진 것이다.


사흘 전, 주말을 앞두고 발표된 450억파운드(약 69조원) 규모의 대규모 감세안 때문이었다. 트러스는 감세로 영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투자자들은 되레 재정 불안,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영국 국채와 파운드화를 투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7일 영국 정부가 감세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IMF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대규모의 무차별적인 감세안은 적절하지 않다며 중앙은행 통화정책은 긴축, 정부 재정정책은 확장으로 방향이 엇갈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28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0월14일까지 장기 국채를 매입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최근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고 10월부터 보유 자산을 줄이려던 통화정책 긴축 방향을 전격적으로 확장으로 틀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힘을 합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BOE가 정부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이라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BOE의 국채 매입 결정은 정부 재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파운드를 찍어내겠다는 뜻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정정책이 통화정책보다 우선시되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물가가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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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든과 묘한 긴장감

감세안 때문에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는 끝난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21일 유엔 총회를 계기로 뉴욕에서 이뤄진 트러스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회담을 보도했다.


특별한 관계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 미국 대학 투어 강연을 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 특별한 관계는 오랫동안 미국과 영국의 오래된 동맹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정상회담 때 으레 언급됐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러스와의 회담에서 특별한 관계를 말하지 않았다고 데일리메일은 꼬집었다. 바이든은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백악관은 한동안 사용을 중단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식적인 답변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때까지 사용하지 않겠다"였다.


트러스가 미국과 영국의 새 무역 협상이 현안이 아니라고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 당시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에서 탈퇴하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021년 1월31일 영국의 브렉시트 절차가 완료된 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미국과의 새 무역협정 체결을 강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트러스는 뉴욕으로 향하면서 미국과의 무역 협상은 의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트러스의 감세 정책은 낙수효과 이론에 기반한 것으로 바이든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낙수효과는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면 이들의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경제가 성장, 그 혜택이 중산층과 하위 계층에까지 돌아간다는 이론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4월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도 낙수효과를 부정했다. 그는 "낙수효과는 없다며 저소득, 중산층 경제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트러스와의 첫 회담을 하루 앞둔 20일 미국 대통령 공식 트위터 계정에 뜬금없이 "낙수효과 이론에 진절머리가 나고 지친다"며 "낙수효과는 없으며 우리 정부는 밑바닥에서부터 경제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썼다. 외신에서는 트러스 총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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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 동지 콰텡과도 충돌

전임 존슨 총리가 잇따른 논란으로 사임한 뒤 새로 선출된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위기에 빠지면서 보수당의 혼란도 커졌다. 트러스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쿼지 콰텡 재무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트러스 총리와 콰텡 장관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보도도 나왔다.


콰텡은 파운드화가 사상 최저로 추락한 지난달 26일 긴급 성명을 내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트러스는 당초 콰텡의 성명 발표에 반대했다고 스카이 뉴스는 전했다. 트러스는 시장 혼란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콰텡의 성명 발표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최고 소득세율을 45%에서 40%로 인하하는 방안을 철회하는 과정에서도 트러스는 최고 소득세율 45% 폐지가 콰텡 장관의 생각이라고 밝혔고 콰텡은 트러스의 결정이라고 말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트러스와 콰텡은 2010년 국회에 같이 입성한 정치적·이념적 동지이며 콰텡은 트러스의 충실한 지지자였다. 트러스는 총리 결선에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과 격돌했는데 전임 존슨 정부에서 수낵 장관과 가장 격렬하게 충돌한 각료가 당시 콰텡 산업장관이었다. 콰텡은 올해 초 런던 그린위치가로 이사해 트러스의 이웃이 되기도 했다.


트러스가 셰일가스 생산을 위해 지난 9일 프래킹(수압파쇄법) 금지 조치를 해제한 결정도 당내 논란을 야기했다. 전임 존슨 정부의 2019년 11월 프래킹 금지 결정을 뒤집은 데다 프래킹 허용을 찬성하는 여론이 27%에 불과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러스는 프래킹을 허용하면서 6개월 안에 가스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콰텡의 생각은 다르다. 콰텡은 지난 2월 충분한 양의 셰일가스를 얻는 데 10년이 걸린다며 프래킹이 에너지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고브 정당 지지율 추이(노동당 빨간색, 보수당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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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에 밀린 지지율

여론도 보수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대신 노동당이 약진하며 권력을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거브가 450억파운드 감세안 발표 뒤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직전 조사(23~25일) 때보다 7%포인트 빠진 21%를 기록했다. 반면 노동당 지지율은 9%포인트 올라 54%를 기록했다. 33%포인트 격차는 노동당이 보수당을 상대로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장 큰 격차로 앞서있는 것이다. 노동당은 올해 초 지지율을 역전한 뒤 점점 격차를 벌리고 있다.


트러스는 보수당 연례 전당대회 개막일인 2일 오전까지만 해도 감세안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가 하루 만인 3일 입장을 바꾸면서 스스로 논란을 초래했다. 보수당 소속의 한 전직 장관은 "이 일은 만회할 수 없다.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라며 "노동당이 웃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노동당은 수낵 전 장관이 아닌 트러스가 노동당 새 당 대표가 돼 총리에 선출된 것이 정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당초 차기 총리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수낵 전 장관은 트러스 총리에 앞설 뿐 아니라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에도 앞섰다. 하지만 노동당 대표 및 총리 선출을 위한 결선 투표는 보수당 당원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트러스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은 수낵을 제쳤다. 노동당 입장에서는 더 쉬운 상대를 맞게 된 셈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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