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에 대한 논의가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지면을 장식하던 때가 있었다. 복잡다기한 에너지 이슈가 '탈원전'에 집중되다 보니 정작 시급히 논의해야 할 전기소비 효율성 제고와 온실가스 감축 이슈는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정부와 한전이 전기요금 체계개편을 발표했다. 물론 지난해부터 개편이 몇 차례 연기된 끝에 올해를 넘기기 직전에서야 마무리돼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전기요금제도가 시대의 흐름을 맞춰가게 됐다는 점에서 안도한다.
세계적으로 전기요금은 비용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과 기후환경비용 분리부과라고 본다. 요금에 연료비 원가와 온실가스·미세먼지 감축비용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기 소비자들에게 가격 신호와 비용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들은 전기소비 효율성을 높이고,국가적으로는 온실가스·미세먼지 감축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전기요금제도에 대한 논란은 개편 전보다 오히려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소모적 프레임에 논의가 갇혀선 안 된다. 핵심은 '요금제도가 얼마나 합리적인가'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수준부터 짚어보자. 2015년 100으로 동일하던 전품목 소비자물가지수와 전기 소비자물가지수의 격차는 커져, 2019년 기준으로 전 품목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5를 기록했다. 반면 전기 소비자물가지수는 87.41이다.
물가 변동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은 석유, 가스, 전기 등 에너지 간 상대가격을 왜곡해 국가적으로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를 유발해왔다. 실질가격 하락으로 전기 소비자는 이익을 얻는 것으로 보이지만 안 써도 될 에너지를 더 사용해 배출하지 않아도 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고 무역수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물론 경직된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가격 변동을 막고 낮은 수준을 유지해 산업활동이나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점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 환경성, 안전성 등을 등한시한 깜깜이 요금이고 수요과 공급을 조절하는 신호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에 발생하는 합당한 비용을 국민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없었다.
합리적 전기요금제도는 전기를 생산해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판매하는데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유연하게, 그리고 적기에 반영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연료비 연동제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료비 변동에 따른 소비자 요금부담을 분산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것이다. 유독 전기요금만 에너지가격 변동이 반영되지 않아 발생하는 전기과소비와 국가적 에너지 대체소비를 방지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것이다.
나아가 발전사의 사업성 악화를 예방하여 전력산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결국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상위 30개 국가 중 자원빈국은 대부분 연료비 연동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국내 석유, 도시가스, 지역난방 요금도 연료비에 이미 연동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전기요금 단가를 조정할 때마다 재현되는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요금체계는 필요하다.
정부나 한전에 남은 과제는 '전기요금체계 개편=요금 인상'이라는 우려와 프레임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요금제도라는 방향성에 확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요금제도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소통하여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효율적 에너지소비로 에너지전환과 수요관리에 더욱 적합한 토양이 조성된다면 결국 그 혜택은 국민들이 입게 된다. 요금체계 개편이 변화의 첫 걸음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김성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신재생융합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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