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벽에서 손톱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면 그건 애니의 비명
누군가의 목덜미에 오싹한 한기가 스쳤다면 그건 애니의 시선
애니는 지하 여행자들의 기념사진 속에 살아요 그들이 남기고 간 인형들 속에 살아요 애니가 애니 곁을 지나가요 애니가 애니를 돌아봐요 애니는 낯선 기억의 주인이 되어 살아요 아무도 헐지 못하는 시간 속에 애니의 방이 있어요
누군가 텅 빈 입속으로 새 한 마리가 스몄다면 그건 연이가 흘린 물의 혀
입에서 입으로 연이는 네버엔딩 스토리 속에 살아요 그 노래가 흐르는 남녀노소 사이에 살아요 미연이의 병실에도 지연이의 알바천국에도 보연이의 요람 속에도 연이가 살아요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칠 때 그건 연이가 움켜쥔 물의 주먹
울음이 터지면 굴뚝처럼 눈물 줄기를 타고 연이가 들어와요 가슴벽을 이부자리 삼아 우린 맞대고 살아요 눈을 감으면 서로의 미래가 되어 우린 반반씩 살아요 내장을 꽂아 둔 화병이 있는 식탁 맨 끝자리에 연이가 살아요 아무도 열지 못하는 명치끝에 연이의 방이 있어요.
긴 시인데, 모두 옮겨 적었다. 차마 한 구절이라도 생략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그래, 슬퍼서 그랬다. 시 본문 아래 시인이 적어 둔 다음의 문장에 가서는 정말로 울음이 터져 버렸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중 김소연, 김시연, 김호연, 박채연, 이수연의 이름을 빌림." 손이 떨려 그 무엇도 더는 적지 못하겠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