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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의 비밀(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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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중 샤갈의 그림은?

(1)술 익는 마을 (2)닭 익는 마을 (3)눈 내리는 마을 (4)나와 마을
우스개로 내본 수능시험이다. (3)번이 함정이다. 샤갈전을 보고온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은 어디 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축에 나도 끼었음을 고백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중학교인가 미술책에서 그 그림을 본 거 같은데? 문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에 있다. 무엇인가에 집단으로 홀렸을까. 정말 눈 내리는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그 전시장에 물론 샤갈의 모든 작품이 전시된 게 아니었기에, 다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지식검색에선 샤갈에게 그런 작품이 없다는 대답이 올라와 있다. 어찌된 일일까.)

그게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때문에 빚어진 혼란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박상우의 소설 제목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보다는 전국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혹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80년대 무렵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 간판은 묘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샤갈이라는 화가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동심같은 순정함, 그리고 눈이 내린 마을 풍경이 주는 낭만과 순백. 예술과 지적 취향에다 이국취미도 슬쩍 분위기를 거들었으리라. 또 모호함의 맛도 괜찮다.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리는 건지, 샤갈이 그린 ‘마을에 내리는 눈’인지 알쏭달쏭하다. 둘 다 넘나들면서 의미를 넓혀놓는다. 그런데 정작 샤갈은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면 이 술집과 음식점들은 무엇을 보고 이런 이름을 달았을까. 김춘수의 시와 박상우의 소설이 그렇게 유명했단 말인가. 교과서 어딘가에 그런 이름의 그림이 잘못(!) 실렸거나, 아니면 실제로 샤갈의 그 그림이 실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쯤에서 다시 생겨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본 그림이 ‘눈 내리는 마을’이 아니라, ‘나와 마을’(샤갈 작품 아래)이라는 작품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면 눈이 한 송이도 내리지 않는다. 혹시 미술교과서에서 오기(誤記)가 있었던 건 아닐까. 개연성은 있지만 지금 내가 확인할 길이 없다. 틀림없이 이런 작품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까닭은 ‘눈 내리는 마을’과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제목이 섞여서 쓰이고 있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건 번역 문장이 취할 수 있는 두 개의 경우가 아닌가. 그렇다면 뭔가 ‘원문’이 있음직한 문장이다. 또 그의 고향 러시아 비테프스크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리란 짐작이 간다. 급한 김에 야후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체로 snow snows falling town village 등의 말이 들어갈 거라 짐작하고 그런 말이 들어간 것들을 검색해본다. 정말, 최소한 snow를 가진 작품도 안보인다. 간신히 일본어로 된 어느 사이트에서 하나 찾아냈다. 제목은 'the snow landscape' 였다. 눈 내리는 풍경(샤갈 작품 위)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본 그림이, 이것이었을까. 분명히 하얀 길 위에 농기구를 멘 저 남자가 있었는데? 이 그림과 ‘나와 마을’이 뒤섞여 기억된 것일까. 알 수 없다.
샤갈의 '나와 마을'

샤갈의 '나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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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이 시가 문제의 그 시입니다. 샤갈전을 계기로 희한한 논란을 부른 한 주인공입니다. 이 시의 제목은 그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 딱 좋게 되어 있습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뒤의 의미를 채택한다면 그것은 샤갈의 작품 '마을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시상을 펼쳐나간 것이 되고, 앞의 의미를 채택하면 샤갈이란 화가의 마을을 그려내는 시인의 상상안(眼)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 할 만합니다.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한 걸 보니, 'Chagall's Village'로 되어 있네요. 그리고 시의 본문에도 '샤갈의 마을'이란 귀절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마을에 내리는 눈'이나 '눈내리는 마을'이란 작품은 다시 묘연해집니다.^^

한 시인이 김춘수에 대해 극언을 퍼붓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무의미시는 일생일대의 사기극이야." 그는 이렇게 단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무의미시가 시단에 낳은 부작용이나, 일련의 무의미시 작업이 건져낸 성과의 부실함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말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좀 과한 말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시 '꽃'이나 '꽃을 위한 서시'에 매료된 나로서는 그의 그런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이 시인이 얼마나 섬세하고 뛰어난 상상력을 가졌나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비테프스크에 정말 3월에 눈이 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도 가끔 3월에 눈이 오죠. 3월 뿐 아니라, 제가 있었던 군대는 5월에도 연병장 눈을 쓸었습니다. 부대가 워낙 산봉우리에 있었던지라 정말 시도때도 없이 눈이 왔거든요. 새벽에 기상나팔이 울리면 으레껏 선배들은 푹푹 찌는 여름이라 할 지라도 이런 농담을 합니다. "얘들아. 밖에 눈 쌓였다. 제설기 들기 집합." 이 말에 번번이 속으면서도 우린 기겁을 하며 밖으로 뛰어나가곤 했지요. 철지난 눈을 어느 시인은 서설(瑞雪)이라고도 합디다만, 내가 느끼기엔 "아직도"라는 기분이 들도록 지겹고 꼴사나운 눈입니다.

김춘수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그 3월 눈을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꽃샘눈이 인상적인 것은, 이미 봄물이 올라 파릇파릇 돋아있는 풀잎, 나뭇잎 위를 무심히 덮으며 내려앉을 때입니다. 그 새싹을 김춘수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라고 표현합니다. 와, 이건 정말 놀랍고 독특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싹에서 사나이의 이마에 돋은 푸른 핏줄을 생각해내다니...그 핏줄이 바르르 떱니다. 새싹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핏줄을 가만히 보면 나무와 풀이 벋어나간 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놀라운 발견 위에 김춘수는 3월의 눈을 덮습니다. 이쯤 읽고나면, 저 사나이가 샤갈이 자주 그리던 자화상으로 겹쳐지고 그래서 이 풍경은 그대로 하나의 회화 속으로 들어가 앉습니다.

김춘수의 상상력 속에선 눈과 3월이 대결하지 않습니다. 그 차가운 것이 새롭게 솟아오르는 생명의 훼방꾼도 아닙니다. 눈이 오면 나처럼 지겨워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다시 겨울로 돌아가, 사물과 사람들은 꿈을 꾸며 '내부'를 키웁니다. 그런 가운데 내 대학시절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두 개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의 이야기. 눈이 오면 그 열매들은 가만히 다시 올리브 빛으로 익어갑니다. 눈 속에서 익어가는 파란 열매, 그것도 쥐똥만한 열매의 '뺨'에서 일어나는 은근한 변화를 시인은 상상 속에서 찾아냅니다. 나를 탄복케한 것은 다음의 이미지입니다. 아낙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면 말입니다. 봄에 눈이 오니 방을 더욱 따뜻하게할 필요가 있겠지요. 살며시 세상을 다시 덮는 눈과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이미지. 아낙의 자리엔, 콧등에 땀방울 송송 맺히신 어린 시절 나의 외할머니가 바꿔 앉으십니다. 샤갈의 마을은, 멀리 러시아로 가지않고, 삶의 보편을 아우르는 추억의 화폭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벗들은 어떤지요. /빈섬.

샤걀 눈내리는 풍경

샤걀 눈내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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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샤갈전을 보고와서

비평가 김윤식씨는 한 산문집에서 샤갈을 아주 인상적인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는 파리 지하철에서 풋잠이 들었는데 꿈에 샤갈이 나타났다. 이 샤갈 귀신은 김윤식에게 말한다. "너는 잘못 살았다." 이 에피소드엔 샤갈과 상관없는 김윤식씨의 자의식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 '푸른 혼'의 화가에 대해 가지는 예술적 경배를 느끼게 한다. 어찌하여 이 국문학 교수는 샤갈을 꿈에까지 초대했을까.

한 석달에 걸쳐서 덕수궁 부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 샤갈전을 본 적이 있다. 아이의 학교 숙제 때문에 손 이끌려 찾아간 곳이었지만 소회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게으름이 후기쓰기를 막았고, 그보다 더 나를 말렸던 건, 샤갈의 그림을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만한 재주 부재였다. 말문이 탁 막혔다고 말해야 할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될 텐데, 저 어눌이 찾아온 건, 그를 명쾌하고 멋지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닐까 하고 뒤늦게 생각을 했다. 뭐라도 써보자. 그렇게 생각을 바꿨다.

샤갈 그림이 가장 인상적으로 눈을 붙드는 힘은 그 색채에서 나온다. 피카소는 말한다. "마티스 이후 색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샤갈 뿐이다." 샤갈 자신도 말한다. "색채는 자연스러움이다. 색채의 폭력은 무엇보다 코에 다가온다. 아주 역겹게." 그는 색깔을 냄새로 맡은 사람이다. 빛에 대해 평생 코끝을 세운 이 화가는 인류가 지닌 빛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화면 위에 끊임없이 올렸다. 샤갈이 쓴 빛깔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푸른 색이다.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이란 책에는 이 푸른 색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한다. "맑은 푸른 색은 그 색 자체의 색감이라기 보다는 그 주변에 있는 색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즉 샤갈의 푸른 색은 어두운 색에 둘러싸여 있어 실제보다 더 맑고 밝게 보인다."

샤갈은 1887년생이고 우리 나이로 99살까지 살았다. 러시아 태생이고 유태인이며 오랫 동안 파리에서 살았다. 천재이면서도 이렇게 장수한 화가의 그림에 대해 몇 마디로 뭉뚱그리려는 노력은 사실 만용에 가깝다.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몇 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걸려 있었고 친절한 도록도 있었지만 그것이 말해주는 건 그저 ‘하나의 흔한 의견’일 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림은 그 의견으로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그 의견보다 나는 한 관람자의 이런 소박한 궁금증이 더 흥미롭다. “샤갈의 그림을 보면 같은 사물이나 동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대체 그 의미가 뭘까요? 예를 들면 괘종시계, 닭, 물고기, 바이얼린, 촛불은 왜 단골로 나타나는지요?”

물론 이 질문엔 대답하는 일은 곤란하다. 그건 샤갈의 내면이고, 샤갈의 삶이며, 샤갈 예술의 심연이기도 하다. 그림의 어둑한 곳에 매복해 있기도 하고, 때로는 기이한 색깔과 형태로 부각되어 있기도 한 이런 사물과 동물들은, 샤갈의 경험 공간과 상상 공간이 서로 넘나들면서 만들어내는 문화적 기억, 혹은 대상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그 문화적 기억들을 해석하고 즐기며 다시 생산해낸다. 기억은 고집을 가진다. 그것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기억의 이런 비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당시를 풍미한 초현실주의는 그에게 저 구체적인 기억과 삶의 모태들을 내던져버리기를 원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 거꾸로 나갔다. 그는 그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를 작품 속에 대부분이라 할 만큼 자주 등장시킨다. 그 고향의 문화적 체험과 향기에 대한 자부심이 작품 속에 강하게 살아난다. 파리의 에펠탑과 도시들도 자주 등장한다. 그는 유태문화 전통을 붙든 채 예술의 전위적 자유를 탐색한 듯 하다. 그래서 형상은 그의 그림 속에서 현실 그대로 나타나는 법이 없다. 샤갈은 말한다. “ 내가 천사의 날개를 그릴 때 그것은 불꽃이고 생각이며 욕망이다. 형상 자체에 대한 숭배는 사라져야 한다. 개별적 상징들로 보지 말고, 형태와 색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읽어달라. 상징은 출발이 아니라 귀착점이다.” 알 듯 말 듯한 얘기지만, 형상에 대해 미련을 싹 버리고 뭔가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것 같다.

샤갈의 그림들에는 그의 두 여인에 대한 예찬과 비탄이 들어가 있다. 또 유태인으로서의 경험, 러시아의 시월 혁명에 대한 체험과 두 차례 세계대전의 피얼룩이 숨는다. 고향 시골의 기억과 파리의 자유로운 공기가 함께 서성거린다. 문화는 샤갈의 기억과 화폭 속에서 뒤섞이면서 늘 하나의 기이한 장관을 만들어낸다. 거기다가 그는 장식적인 회화에도 능했다. 그의 눈부신 색감은 그런 재능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왜 허공에 떠 있을까. 파리와 비테프스크 하늘 위에 떠있는 연인을 그린 한 작품(‘도시 위에서’)은 110억 짜리라던가 그랬다. 그걸 내 눈으로 보다니, 돈다발이 겹치면서 새삼 그게 호강처럼 느껴졌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 붙는 건, 아직 우리가 현실적인 고정관념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화면 속은 현실이 아니다. 샤갈의 시적 몽상의 공간이다. 거기엔 당연히 중력도 없으며 현실적 형상이 갖춰져 있을 필요도 없으며 색깔 또한 그렇다. 거기엔 차라리 신의 흔적이 개입되어 있다. 거대한 무질서는 아름답다. 원근법이 흔들리고 땅과 하늘도 제 멋대로다. 사람의 목 위에 동물의 머리가 붙고, 지붕에 눈이 붙어 있어도, 따질 일은 아니다. 이 툭 터진 공간을 떠다니며 인간의 내부로 향한 자유로운 눈을 뜨면 된다. 그래서 처음엔 당황스럽고 익숙해지고 나면 그 세상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진짜 삶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샤갈의 매력은 서커스를 보는 그의 눈에도 있다. 그는 서커스를 워낙 좋아해서 그것을 작품에도 자주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의 회화도 언어도 결코 서커스의 정확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줄 하나를 놓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저 몸동작의, 필사의 정교함. 얼핏 보면 애들 그림같아 보이는 샤갈의 그림은 그런 치밀하고 섬세한 원칙과 계산들로 이뤄져 있단 얘기다. 혹시 보신 벗들은 어떠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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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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