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글의 결론 부분에 나는, 융이나 라캉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호오형 인간은 대개 어린 시절의 감수성이나 판단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좋다, 싫다 라는 방식의 판단을 자주 하는 사람은, 유아기의 대상 관리 방식(울면 어머니가 달려와 먹을 것을 주는 나름의 기호와 신호 체계들)이 다음 단계인 이성 작동의 판단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면 유치하다는 얘기다. 돌이켜 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닌 듯 하다. 호오형이 좀 더 원형적이고, 시비형은 업그레이드된 판단 방식인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강력한 지도자나 뛰어난 전사(戰士), 예술가, 심지어 명망있는 학자나 기자, 문학가들 중에는 '호오형'이 생각보다 많으며, 그 판단의 단호함이나 감정적인 성향을 활용하여 대중이나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열정이나 비전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몰입이나 신념으로 읽기도 한다.
'나쁜 놈' '죽일 놈' '맘에 안드는 놈' '괘씸한 놈' '기분 나쁜 놈' '내 편이 아닌 놈' '내 반대편에 있는 놈'이란 생각을 바탕에 깔고 그 바디 위에 고급렌즈들을 끼워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이같은 호오형은 지식인의 한 전형이다. 명성을 지닌 많은 지식인들이 다혈질이며 분노 중독이며 표리 부동이며 자기 성찰이 부족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까닭은, 시비형 허울을 지닌 호오형이기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됐다. 나 또한 먹줄을 잡고 사는 먹물 인간으로, 어린 날의 흑백 판단과 네편 내편의 정의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세상에서 배운 논리나 이성적 분별이나 판단 유예와 관용을 이야기하면서 호오형을 분칠해온 게 사실이다. 많은 글들은, 내부의 골짜기에 호오형의 판단을 이미 내려놓고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것저것 논리들을 끌어대며 시비형 시늉을 잔뜩 하고는, 칼을 내려칠 때는 내심에 있던 비수를 꺼내 들이대는 치졸한 논객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더러운, 판단의 사바세계에서 훌쩍 벗어나는 지식인이 있다면, 정말 존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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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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