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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3가지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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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영화 '변호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의 한 모습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모순적인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각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실제 '변호인' 제작자 및 출연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영화다. 창작은 배우와 제작자의 몫이지만 해석은 보는 이들의 몫이기에 영화 속에 담겨진 정치적 의미를 숨은그림 찾기 해 보겠다.(영화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파트에 살던 아주머니는 왜 눈썹을 한쪽만 그렸을까?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이 영화 초반에 큰돈을 벌어 아파트를 사는 장면이 있다. 낯선 손님에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던 아주머니는 송우석의 '변호사' 명함에 문을 열어준다. 거실에 앉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송우석을 못마땅해 하던 아주머니는 들고 온 파인애플(당시 매우 귀한 과일)에 마음이 녹는다. 이후 송우석이 아파트 시세의 4분의 1을 웃돈을 더 얹어서 집을 사겠다고 하자 그녀는 갑작스런 횡재에 눈이 잔뜩 커진 채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송우석을 대접한다. 그제서야 송우석은 “눈썹 하나 마저 그리라”며 충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웃돈을 얹어주겠다는 송우석의 말에 그녀는 그만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체면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재밌는 장면이지만, 왜 아주머니는 얼굴에 화장도 제대로 못한 우스광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었을까?

참여정부는 그 어떤 선거보다 극적인 과정을 거치며 등장했지만 정권 말기에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 채 외면을 받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지 못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치솟는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각종 투기억제책을 내놨지만 정부 출범 1년 만에 아파트 가격이 20% 오르는 등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만은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안정시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부의 의지를 믿은 국민들은 시장과 탐욕 앞에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던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됐다. 실패한 부동산 대책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중산층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결국 중산층의 외면을 받으며 다음 정권을 내주게 됐다.
눈앞의 이익 앞에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잊었던 이는 아파트에 살던 그녀 뿐은 아닐 것이다. 송우석이 마저 눈썹을 그리라며 핀잔은 준 이는 과연 아파트에 살던 그 아주머니 뿐 이었을까?

2. 마지막 장면에 일어선 백발의 변호사는 누굴 닮았는데...

영화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송우석의 모습으로 끝났다. 이 자리에는 부산지역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민주시민으로서 법조인으로서 시대에 충실히 살아왔던 송우석을 변호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판사가 변호인들의 출석을 확인하기 위해 한명 한명씩 출석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면 재판정을 기준으로 우측 통로쪽에 백발의 한 사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백발에 안경을 썼고 각진 얼굴을 한 이 사내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한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를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변호사가 재판관의 호명을 듣고 일어서는 순간, 송우석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스쳐 지나가거나 흐릿한 배경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그 남자는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한 정치인을 무척이나 닮았다. 영화를 두고서도 그 정치인이 변호인의 정치적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정치인은 변호인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 그는 영화가 나온 직후에도 관람을 하지 않은 채 1월이 되어서야 부림 사건 관계자 및 부산지역에서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인사들과 영화를 볼 것으로 알려졌다.

3. 변호인은 안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묻는다

이 외에도 변호인의 몇몇 장면에는 정치적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가령 송우석이 부산 지역 변호인 모임에 갔을 때 뷔페 음식을 담을 때 노란색 파프리카 채 썬 것을 담는 장면이나 집 천장에 뛰어다니는 쥐로 곤란해 하는 장면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특별히 정치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많은 관객들은 굳이 노 전 대통령과 이어 생각하지 않더라도 영화 자체의 울림은 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가 노 전 대통령 한 개인을 미화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가명 등을 통해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했다는 점 등은 이 영화가 특정한 정치세력을 위한 영화로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굳이 이 영화가 표방하는 주제의식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멋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송우석은 세무 관련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도와주라는 아내의 성화에 한참 재밌게 보는 TV 프로그램을 끄고 이웃에게 법률상담을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송우석을 향해 그의 아내는 ‘멋있다’는 말을 한다. 이후 송우석은 영화 곳곳에서 “아빠 멋있지”, “멋지지 않나” 등의 말을 하며 멋있는 삶을 향해 다가간다.

그러나 멋있는 삶은 공짜가 아니었다. 멋있는 삶은 순간 또는 영원히 일상의 안락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TV 앞에 누워 깔깔 웃으면서 멋있는 삶을 살 수 없다. 또한 생활인의 자세로 돈벌이 급급한 법조인에게도 멋진 삶은 불가능하다. 멋있는 삶은 작게는 일상의 안락함을, 크게는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 편한 삶은 네 발로 걷어찬거다’라는 사무장의 말은 결국 예언처럼 송우석의 삶을 관통할 것이다.

송우석은 돈벌이와 일상의 안락함을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존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가 재판을 받았을 때 나서준 99명의 변호사가 함께 해주는 것은 돈만 밝히며 일상의 안락함을 갈망했던 송우석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순간의 안락함을 버리고 불의에 항거하고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삶을 내놓는 수많은 송우석이 있다. 또한 멋있는 삶과 안락한 삶 사이에 기로에서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어떤 수준의 균형감을 유지해야 할지를 두고서 고민하는 시민들의 삶이 있다. 영화 변호인은 스스로와 타인을 향해 ‘안녕한지’를 묻는 수많은 사람에게 '멋있는 삶'이 꽤 '멋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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