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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이광종 호', 28년 만에 AG 정상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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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종 U-22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이광종 U-22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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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축구팬들의 눈과 귀는 내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할 국가대표팀에 쏠려 있다. 그런 가운데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4일 이광종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내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할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협회와 이 감독의 목표는 우승이다.

한국 축구는 1986년 멕시코 대회 뒤 8회 연속, 통산 9차례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의 강호다. 그러나 정작 아시아 무대에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의 경우 초창기인 1956년 제1회 대회(홍콩)와 1960년 제2회 대회(서울)에서 2연속 정상에 오른 것이 전부다. 그 뒤 반세기가 넘도록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사이 일본(1992년, 2000년, 2004년,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1984년, 1988년, 1996년), 이란(1968년, 1972년, 1976년) 등은 통산 우승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이들 외에 이스라엘(1964년, 1970년대까지 아시아축구연맹에서 활동), 쿠웨이트(1980년), 이라크(2007년)가 한 차례씩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16차례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종목에서 세 차례 우승했다. 1970년 제6회 대회(방콕)와 1978년 제8회 대회(방콕) 그리고 1986년 제10회 대회(서울)다. 이 가운데 단독 우승은 제10회 대회 한 번뿐이다. 제6회 대회와 제8회 대회는 각각 버마(오늘날 미얀마), 북한과의 공동 우승이었다.

한국이 6·25전쟁 때문에 출전하지 못한 1951년 제1회 대회(뉴델리)에선 인도가 이란을 1대 0으로 누르고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초대 챔피언이 됐다. 1954년 제2회 대회(마닐라)에서 한국은 자유중국(오늘날 대만)에 2대 5로 져 준우승했다. 1958년 제3회 대회(도쿄)와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도 다르지 않았다. 자유중국과 인도에 각각 2대 3과 1대 2로 져 만년 2위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1966년 제5회 대회(방콕)에선 6강이 겨루는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조별리그 A조에서 태국에 0대 3, 버마에 0대 1로 졌다. 그해 말레이시아가 주최한 메르데카배 대회에서도 4위에 그치자 대한축구협회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예선에 대비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시아경기대회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이 대회에서 버마는 이란을 1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1950-1960년대 아시아 축구 판도는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이광종 감독(가운데)을 둘러싼 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사진=정재훈 기자]

이광종 감독(가운데)을 둘러싼 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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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벌금 5천 달러의 징계를 받는 일도 있었다. 북한의 경기력을 의식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예선에서 호주를 6대 1과 3대 1로 꺾었다. 본선 8강의 돌풍을 어느 정도 예고한 결과였다.

아시아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 축구는 1970년 제6회 대회에서 공동 우승이긴 하지만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1969년 ‘105일 유럽 전지훈련’을 다녀오는 등의 노력이 빚은 결과였다. 물론 월드컵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맞은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대회 직전 거둔 제3회 킹스컵대회 우승이 그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 조별리그 C조 첫 경기에서 이회택의 결승골에 힘입어 난적 이란을 1대 0으로 꺾었다. 이어진 인도네시아와의 일전에선 0-0으로 비겨 버마, 태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등 6강이 2개조로 나뉘어 겨루는 2라운드에 올랐다.

그 첫 상대는 태국이었다. 그 무렵 태국의 홈 텃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박이천, 정강지, 김호 등이 관중석에서 날아든 빈병과 돌에 맞아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대표팀은 2대 1로 이겼다. 두 번째 경기에서 버마에 0대 1로 졌지만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올라 라이벌 일본과 맞붙었다. 1969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에서 1승1무(2대 0, 2대 2)로 앞섰던 한국은 천신만고 끝에 기세를 이어갔다. 연장 접전 끝에 박이천의 결승 골에 힘입어 2대 1 승리를 거뒀다. 또 다른 준결승전에선 버마가 인도를 2대 0으로 눌렀다. 인도는 3위 결정전에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1대 0으로 따돌리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과 버마는 연장전 30분을 포함해 120분의 혈투를 치렀지만 0대 0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해 공동 우승했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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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8년 뒤인 1978년 제8회 대회에서 다시 한 번 공동우승을 거뒀다. 결승전에서 북한과 1945년 분단 뒤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를 가졌는데 0대 0으로 비겼다. 한국은 다시 8년 뒤인 1986년 제10회 대회 결승에서 조광래와 변병주의 연속 골로 사우디아라비아에 2-0으로 승리, 아시아경기대회 단독 우승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1990년 제11회 대회(베이징) 동메달을 시작으로 2010년 제16회 대회 동메달까지 20년 동안 금메달을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이광종 감독은 지난 7월 터키에서 열린 2013년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사상 최약체라는 우려에도 대표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이번에 주어진 숙제는 더 큰 짐이다. 28년 만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바라본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는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 열린다. 월드컵 멤버 가운데 24세 이상의 와일드카드를 3장 안에서 쓸 수 있다. 이광종 감독이 만지작거리는 와일드카드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 와일드카드는 지난해 런던 올림픽의 박주영(아스날)처럼 한국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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