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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지엽의 '구제역 살처분 동물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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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謹弔) 글씨 길게
마당까지 내려와
눈을 쓸고 있는 저녁

웃고 있는 돼지와
눈이 큰 선한 소의 영정
조문 올 다른 돼지도 소도 없는 영 조용한 마을

이지엽의 '구제역 살처분 동물 분향소'


■ 몹쓸 병 때문에 돼지와 소들을 떼로 묻어 죽일 때, 나도 그 비감을 시로 쓴 적이 있다. 끓는 마음이 뚜껑을 열고 나와 행간만 더럽혔을 뿐, 정작 시는 제대로 들어앉지도 못했는데, 이 시를 보니 몹시 부끄럽다. 살처분 동물 분향소에서 시인은 딱 두 가지 이미지만 찍었다. 하나는 근조(謹弔)라고 쓴 글씨. 사람이 죄 없는 동물을 살처분하는 일이 미안하여, 죽은 사람처럼 대우해 주며 제(祭)를 지내 주는 곡절이 그 리본에 생생히 담겼다. 리본이 바람에 펄럭이며 마당의 눈을 쓸고 있다. 또 하나, 분향소에 놓인 돼지와 소의 영정을 찍었다. 돼지는 웃고 있고 소는 눈이 크고 선해 보인다. 죽어서 해탈한 존재처럼 참 담담하다. 누가 조문을 오겠는가. 사람이 올 리는 없다.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시인은 기막힌 역설로 여운을 돋운다. 돼지와 소들이 조문을 와야 하는데, 다 떼죽음을 당했으니 그럴 사정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장례식이니 짐승들에 부고를 돌렸을 리도 없다. '영 조용한 마을'이 주는 상실감과 꾹꾹 눌린 슬픔. 이 대목이 아리고 쓰린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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