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의 '여승' 중에서
■ 이 시는 깨끗한 사람냄새에 관한 가장 인상 깊은 기록이다. 감기 들린 살구꽃 봄 어린 시인이 빼꼼히 장지문 구멍으로 내다본 거기 서 있는 고깔 쓴 여승에게 품은 엉큼한 그리움. 처마 끝에 걸린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냄새. 시인은 그걸 보았다. 여인과 병치된 저 풍경에서 우러나오는 후각. 소년은 자기도 몰래 그녀를 뒤쫓고 있었다. 가슴 뛰며, 몰래. 그런데 문득 여승이 뒤돌아보며 나직이 말한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이 예스럽고 은근한 말씨 속에 다시 포름한 낮달의 냄새를 느낀다. 시의 행간 속에도 그 냄새가 난다. 한참 코를 킁킁이며 다시 잿빛 옷 일렁이며 훌훌 떠나가는 여승의 뒷모습을 넋 잃고 바라본다. 사람, 참 곱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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