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저詩]이빈섬의 '나무예수'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고결한 최후에 인간은 고개 숙여 한 신앙을 이뤘다. 하나, 보지 못하였구나. 그를 껴안고 있는 등 뒤의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꼿꼿한 육신을 죽여 가로로 뉘어 팔을 만들고 세로로 세워 머리와 다리를 만든 열십자 나무는 부활의 운명이었다. 인간의 팔은 나무의 팔에 묶고 인간의 몸은 나무의 몸에 묶어 비로소 인간은 초월하고 나무는 영원히 인간에게 묶인 형상이 되었다. 들리는가, 인간을 안고 우는 나무의 울음소리가. 카메라 렌즈의 심도를 바꿔 들여다보면 비로소 보인다. 피얼룩진 인간을 영원히 떠받치며 그 향기로 고통을 씻는 향긋한 나무예수.

망월사(望月寺) 가는 길 폭우에 쓰러진 늙은 참나무, 놀란 뼈 하얗게 드러냈다. 매달린 잎들 생의 꿈 덜깬 청복엽(靑複葉)의 눈 껌벅인다 서서 살고 서서 죽는 붙박이의 저주 끊었는가. 한 생애의 장좌불와(長坐不臥) 그 꼿꼿한 믿음조차 놔버리고 벼락 맞은듯 벌렁 누웠는가. 그 귓전에 불어난 물소리 흐르고 코박힌 가지에 흙향기 감돈다. 썩어가는 일만큼 설레는 영원이 어디 있으랴. 지척에 절간을 두고 제 가지에 가려 못봤던 그 낮달 망월(望月)하며 평생 가려운 속 시원해졌을 이제야 참 나무 되었구나.
어떤 목숨은 괴로움 만으로 속살이 된다. 추울 때 더울 때 이를 악물고 몸을 뒤튼 굳은 살로 자기 안에 시계를 품는다. 만지면 한 생애 뱅뱅 돌아 걸어온 길들이 칭칭칭 감기는 목리(木理). 가도가도 제자리였다, 헛걸음으로 불린 맴맴. 자기를 이기느라 나날이 할복한 자국. 속없는 각질만 켜켜이 늘려놓았다. 향그런 넋의 중심에 사납게 돌을 던진 이는 누구인가. 목숨 내내 느린동작으로 번져나간 필생의 파문.

이빈섬의 '나무예수'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 어도어 이사회 물갈이…민희진은 대표직 유임 (상보) 김호중 검찰 송치…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 추가 [포토] 북한탄도미사일 발사

    #국내이슈

  • 트럼프 "나는 결백해…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버닝썬서 의식잃어…그날 DJ는 승리" 홍콩 인플루언서 충격고백 안개 때문에 열차-신호등 헷갈려…미국 테슬라차주 목숨 잃을 뻔

    #해외이슈

  • [포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충일 [이미지 다이어리] '예스키즈존도 어린이에겐 울타리' [포토] 시트지로 가린 창문 속 노인의 외침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포토PICK

  • 베일 벗은 지프 전기차…왜고니어S 첫 공개 3년간 팔린 택시 10대 중 3대 전기차…현대차 "전용 플랫폼 효과" 현대차, 中·인도·인니 배터리 전략 다르게…UAM은 수소전지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심상찮은 '판의 경계'‥아이슬란드서 또 화산 폭발 [뉴스속 용어]한-UAE 'CEPA' 체결, FTA와 차이점은? [뉴스속 용어]'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속도내는 엔씨소프트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