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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김병호의 '환한 길 하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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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봄산부인과 병원 앞/수줍은 아내와 난감한 나는/서둘러 친가와 처가에 소식을 전하는데//아이가 먼저 닿아 있었다//고향 어머니는 산기슭에서 내려와/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호랑이를 맨발로 안으셨고/처제는 무지개 환한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깨물었다고 하고/시골의 처외할머니는 댕기머리 처녀가 되어/꽃뱀 한 마리를 치마폭에 담으셨단다//(......)//내가 잠시 우주의 저녁이었을 때/한 숨 한 숨/거닐었던 숨들이 모여 별자리를 만들고/내가 다시 바다의 새벽이었을 때/한 눈 한 눈/몸 비벼 만든 종소리들이 아침을 이끌었듯이//(......)

■ 아빠가 된다는 일에 흥분한 사내. 숨소리는 숨겼지만, 아기에 대한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열광은 여기다 쏟아놓았다. 임신 소식을 알리려고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와 처제, 처외할머니는 태몽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을, 아이가 이동해온 길이라고 의미를 붙이자, 생명이 깃드는 놀라운 신화적인 길이 보인다. 호랑이가 되었다가 복숭아가 되었다가 다시 꽃뱀으로 바뀌어 꿈으로 스며들면서 아이는 친지들에게 먼저 스스로의 탄생의 고지한 뒤 서울로 올라와 의사의 초음파 청진기 아래서 사인을 보내준 셈이다. 태몽을 이렇게 말한 시인이 있었던가. 아이를 내 의지대로 만들었다고야 말할 수 없지만, 저녁의 숨결로 별자리를 만들고 새벽의 종소리로 아침을 만들던 그 시간의 비밀과 공간의 비밀을 모아, 감꽃 하나를 피우고 그와 함께 온 아이의 생명 하나를 준비하였단다. 멋지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배를 만져보는 사내. 태몽으로 오고 우주적인 탄생의 비화로 온 그 환한 길의 종착지점을 확인하는 환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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