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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프라이스 폐지 100일 "기업·소비자만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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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자율 맡기겠다고 해놓고
권장소비자가격 돌연 부활
정부 통제에 시장기능 죽어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8일이면 과자, 아이스크림, 빙과류, 라면 등 4개 식품에 대한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폐지된 지 100일이 된다.
가공식품에 확대 적용돼 도입한 지 불과 1년 만에 폐지된 오픈프라이스 제도는 전형적인 '조령모개'식 정책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기업들에게 혼란만을 안겨주고 쓸쓸히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이후에도 정부와 업계의 마찰은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물가잡기를 위해 시행했던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실패하자 다시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부활된 권장소비자가격을 지난해 6월 수준으로 책정하라고 권고(?)했다. 사실상 가격 인하를 주문한 셈이다.

업계는 반발했으나 정부의 '으름장'에 결국 백기를 들었고, 내년 1월부터는 정부의 안대로 전 제품에 대한 권장소비자가격 표기가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픈프라이스제도 폐지와 권장소비자가격의 부활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 본다.

◆시행 1년 만에 폐지된 오픈프라이스제도 평가는? "낙제점" = 정부가 지난해 7월 가공식품 4종에 오픈프라이스제도를 도입한 것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목적이었다. 가격 결정권을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로 넘기면 판매자끼리 가격 경쟁을 펼쳐 소비자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던 것.

하지만 오픈 프라이스 도입 후 제조업체는 원가 상승을 이유로 일부 제품의 출고가를 올렸고, 유통업체는 출고가 인상을 이유로 판매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판매점 별로 편차가 생기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일례로 지난해 7월부터 올 5월까지 빙과류는 18%, 비스킷과 아이스크림 가격도 각각 1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최대 4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유통업체끼리 경쟁을 유도해 가격을 내리겠다는 의도였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소비자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6~7명은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사실상 '낙제점'으로 평가했다.

◆권장소비자가격의 부활…정부 "물가잡기" VS 업계 "기업이 봉이냐" =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시행 1년 만인 지난 6월 30일 4개 품목에 대한 오픈 프라이스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8월부터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가 부활됐지만 이 제도의 정착이 쉽지 않았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새롭게 표시되는 권장소비자가격은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시행 전인 지난해 6월 가격 기준에 맞춰져 사실상 가격 인하를 단행하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오픈 프라이스를 시행할 때에는 정부와 충분한 논의가 있었고 이미 1년 전에 예고돼 있어 준비할 시간도 있었지만 이번 폐지는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내려진 발표라는 얘기다.

이처럼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달 18일 "소비자 다소비 제품 123개에 지난해 6월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키로 업계와 합의했다"면서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될 수 있도록 농심ㆍ롯데제과ㆍ크라운해태ㆍ빙그레ㆍ오리온 등 5개 가공식품 업체에 강력히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또한 업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같은 달 초 임원들을 소집한 자리에서는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고 해놓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의한 적도 없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얘기다. "기업이 봉이냐"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다.

◆통제받는 기업과 경제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에?" = 업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야말로 물가 잡기에 혈안이 된 정부가 물가를 잡으려다 기업을 잡는 셈이 됐다는 얘기다.

기업으로서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내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의 카드를 꺼내들며 "이래도 말 안 들을래"하는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고 배웠으나 요즘 상황을 살펴보면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서 "기업에만 반강제로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을 넣지 말고 식품가공업체가 많이 쓰는 원료를 중심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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