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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나의 캐디편지] 벙커 샷하는 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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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벙커 샷이 약하신 고객님이셨습니다.

티 샷, 세컨드 샷은 다 잘 치시지만 벙커에만 들어가면 "아이구, 아이구"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홀마다 벙커에 볼을 쏙 집어 넣으셔서 힘든 탈출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다니셨죠. 아무래도 벙커에 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큰 긴장감을 만들어 또 다시 벙커 샷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벙커 샷 연습하지 뭐"라고 태연하게 말씀하셨지만 홀을 거듭할수록 말이 없어지시고 표정도 점점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벙커로 들어간 볼. 이번에는 특히 턱이 아주 높은, 무시무시한 그린 앞 벙커입니다. 저는 그린에서 다른 고객님들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아이고"소리와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클럽헤드와 모래를 보았죠. 또 다시 한 번 "아이고"소리가 들리면서 고객님은 보이지 않고 클럽 헤드만 반짝였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고객님 목소리와 헤드만 보이길래 걱정이 돼서 벙커로 내려가 고객님을 살펴보았습니다. "고객님 괜찮으세요? 그냥 올려놓고 치세요"라고 말씀드리자 고객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상태로 "언니~"라고 애타게 부르셨습니다. "언니, 이 볼 국자로 퍼 올렸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갔지만 야속한 벙커는 계속 고객님을 괴롭혔죠. 고객님께서 벙커샷을 계속 하실 때 마다 저마저도 "진짜 카트에 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큰 국자로 국에 든 감자 푸듯이 가볍게 퍼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무를 할 때면 그 홀의 벙커만 봐도 그 고객님과 국자가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곤 한답니다. 그리고 "언니, 나 오늘 하늘코스 벙커 몇 개인지 다 알았어"라고 말씀하시며 힘들었을 라운드에 미소를 더해주신 고객님 덕분에 유난히 벙커에 약하신 고객님들께 국자 이야기를 해드리곤 한답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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