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식의 왜곡된 스펙 쌓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입학사정관제의 탄생과 함께 출발한 스펙 쌓기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부실한 스펙용 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열리고 있으며, 심지어 스펙용 대회를 고등학생이 주최하고 참가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대회 개최 실적도 스펙이라는 것이다. '스펙 쌓기'라는 길에서 방향을 잃은 학생들은 갈 곳 몰라 떠돌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잠시 내려앉고 있지만 자신이 내려앉은 곳이 얼마나 허망한 곳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도대체 스펙 쌓기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스펙이 스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스펙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여러 대학이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렇듯 부나비처럼 몰려다니며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선 내용이 무엇이든 학교생활기록부나 포트폴리오에 한 줄이라도 써 넣을 무엇인가가 필요하며, 나아가 그것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면 금상첨화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렸던 내신, 수능, 논술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준비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는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펙은 많은 학생들에게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신, 수능, 논술, 다양한 스펙 등 그 모서리에서 언제든 불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밑도 끝도 모르는 '공포의 다각형'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을 안겨 준다.
교육 당국은 이런 현상에 대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대학은 학생이 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학습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내용, 그것도 학교 내에서 이뤄진 다양한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애초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입학서류에 단 한 줄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쌓은 스펙이 실제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래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스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