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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문제는 수사의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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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엑스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강신업 엑스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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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대구 성서초등학교 어린이 5명이 도롱뇽을 잡는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02년 9월 그들은 와룡산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법의학자들은 그들의 두개골에 나타난 상흔을 보고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소위 '개구리 소년' 사건이다. 도롱뇽을 잡으러 간다며 와룡산으로 떠난 5명의 아이들이 감쪽같이 죽임을 당했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개구리 소년 사건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 초동 수사의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수사당국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갔거나, 섬이나 어딘가로 납치돼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당시는 공교롭게도 여성들을 납치해 술집에 팔아넘기거나 아이들을 납치해 앵벌이를 시킨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실제 그런 사례들이 밝혀지기도 했었다) 그런 가정하에 수사당국은 사라진 아이들을 찾는다며 수십만 장의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예단은 대단히 잘못됐던 것이다. 개구리 소년들은 초등학교 4~6학년의 건강한 아이들로 와룡산은 그들이 자주 놀러 가는 곳이어서 지리에 아주 밝았으며 일행이 5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정상이 300m에 불과한, 동네 불빛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산에서 길을 잃었을 리도 없고, 또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뒤 어딘가로 끌려갔다면 목격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수사기관은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하룻밤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 없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곧바로 아이들이 죽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주검을 찾는 데 집중했어야 옳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전과자, 불량배, 정신병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시작했어야 한다. 범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범인은 언제나 현장 가까이에 있는 법이므로 걸어서 한 시간 내에 이동이 가능한 와룡산 4㎞ 반경 안에 있었을 것이다.

범인은 우연히 와룡산에 갔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골목대장 짓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겁을 주거나 위협을 가했을 것이다. 겁을 먹은 아이들이 "아저씨, 왜 그러느냐"고 항의를 하며 벗어나려 하자 범인은 화를 내며 아이들을 벌주거나 때리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의 또는 예기치 않은 과실로 한 아이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죽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범인은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이들을 모두 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도망치지 못했을까. 아이들이 무엇에 겁을 먹어 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제압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범인과 잘 아는 사이여서 방심했을 것이다. 범인이 한 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개연성 있는 가설을 세우고 처음부터 철저하게 초동수사를 했더라면, 그래서 범인을 잡아서 그 죗값을 받게 했더라면, 비명에 간 아이들의 유족들이 길고 큰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물론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불러다 조사를 했는데도 단서를 찾지 못했고,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아이들의 주검을 찾지 못했다는 등….

그러나 개구리 소년의 아버지들은 지금도 아이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이 아이들을 죽여 집 어딘가에 파묻었다는 어느 범죄심리학 교수의 말만 믿고 그 집을 구석구석 파헤치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수사를 한 수사기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개구리 소년의 아버지들이 사설탐정을 허용하는 내용의 민간조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당시의 수사가 미흡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수사를 하는가가 아니고, 누가 제대로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는가이다.

강신업 엑스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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