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
연재기사 194개
배우, 감독 등의 삶, 연기, 해석, 사회적 파급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인터뷰 기사. 가십이나 홍보, 단순 소감 등을 배제하고 직업적 가치에 주목합니다. 때로는 인문학의 힘을 빌려 독자의 수월한 이해를 돕습니다.
온몸은 귀신, 눈빛만 임나리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의 임나리(강미나)는 자기방어적 가해자다. 저주가 걸린 애플리케이션에 소원을 빌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수록 이성을 잃고 원귀에 잠식당한다. 매흉(埋兇)을 찾는 친구들을 방해하고 위험에 빠뜨린다. 배우 강미나는 임나리가 사회적 위치와 감정적 안정을 지키려고 타인을 배척하는 과정을 다양한 신체 언어로 구현했다. 불안과 결핍이 공격성으로 왜곡되는 심리를 섬세하게
2026.05.04 10:34
맹목적 최선은 폭력…정답 대신 나만의 스텝 밟는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의 김국희(염혜란)는 한별구청 기획과장이다. 빈틈없는 원칙과 타협을 모르는 성실함으로 승승장구한다. 동료들은 탁월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퇴근 시간마저 무시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잣대를 버거워한다. 굳건한 신념이 주변을 질식하게 만드는 아집으로 작용한다. 염혜란은 이 경직한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렸다. 타인에게 정해진 박자를 강요했던 억압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해방의 서사를
2026.03.03 18:53
마주함보다 깊은 나란한 응시…고아성이 세공한 '사랑의 본질'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의 미정(고아성)은 철저히 소외된 인물이다. 세상이 규정한 잣대 밑바닥에서 숨죽여 살아간다. 고아성은 이 척박한 삶을 값싼 동정이나 전형적인 피해자의 틀에 가두지 않았다. 얄팍한 장막 뒤에 숨는 대신,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눈빛으로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연대의 서사를 완성했다. 단단한 시선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은 나약한 자신과의 대면이었다. 그는 극 초반의 미정에 대해 "눈에 띄지 않으
2026.02.26 08:11
차가운 얼굴에 숨긴 끓는점…신세경의 침묵은 비명보다 강했다
영화 '휴민트'는 총탄이 오가는 첩보전 속에서 집요할 정도로 한 여인의 얼굴을 파고든다. 배우 신세경이 연기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가장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품고 있다. 구출을 기다리는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단단한 삶의 의지를 품은 인물이다. 신세경은 "드라마틱한 비극 속에서 생(生)에 대한 열망이 가장 뜨거운 인물"이라 정의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
2026.02.13 15:00
이념이 휩쓸고 간 텅 빈 눈동자…그 속에 '순수'를 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살을 에는 칼바람, 그 삭막하고 건조한 동토 위에 한 사내가 고립돼 있다. 영화 '휴민트'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충실한 부속품이자, 이념으로 무장한 원칙주의자다. 류승완 감독은 견고한 그의 세계가 단 한 명의 존재로 인해 어떻게 균열이 일어나고, 끝내 붕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쫓는다. 박정민은 총을 든 첩보원의 비장미보다 내면이 무너져 내릴
2026.02.11 10:00
"욕하며 싸워도 밥상은 같이" 이희준이 파헤친 'K가족' 미스터리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때로는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 배우 이희준이 메가폰을 잡고 천착한 주제는 이 영원한 난제인 '가족'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중편영화 '직사각형, 삼각형'은 좁은 빌라 거실에 모인 한 가족의 소동극을 통해,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의 부조리를 유쾌하고도 서늘하게 해부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인간관계의 해법을 감성이 아닌 '도형'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모티브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2026.02.04 08:00
"도라미는 나를 지키는 좀비"…고윤정이 그린 슬픈 '자기방어'
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의 차무희(고윤정)는 자고 일어나니 톱스타가 된 신데렐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가 1000만 명을 돌파하고, 가는 곳마다 환대가 쏟아진다. 그러나 세상이 '대세'라 치켜세울수록, 내면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고윤정은 "행복과 불안은 공존한다"며 "가진 게 많아지면 그만큼 이 행복이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커지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이런 면면은 차무희의 자격지심에서 엿볼 수
2026.01.29 11:00
"죽임으로써 살려냈다"…유해진이 완성한 가장 처연한 '구원'
유해진의 얼굴은 늘 장르를 규정짓는 이정표였다. 입매가 올라가면 코미디, 미간이 좁혀지면 스릴러가 됐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 익숙한 도식은 지워졌다. 역사의 격랑 앞에 선 한 인간의 처연한 민얼굴을 드러낸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을 촌장 엄흥도다. 유배객을 유치해 부흥한 이웃 마을을 목격하고, 같은 방식으로 팔자를 고쳐보려 한다. 그러나 얄궂게도 첫 손님은 복권 가능성이 전무한 폐주(廢
2026.01.27 07:00
"계엄도 저항도 '애국'이라는 세상, 50년 전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요즘 뉴스를 보면 1970년대와 겹쳐 보인다.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애국, 그걸 막아서는 것도 애국이라 한다. 저마다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충돌한다. 이 애국의 카오스(혼란)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름 돋게 똑같다." 우민호 감독에게 1970년대와 2020년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영화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내놓은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중앙정보부 정보과장 백기태(
2026.01.21 10:21
13년을 바쳐 1% 더했다…최강록의 더딘 셈법
오늘날 요식업의 트렌드는 '속도'와 '자극'에 방점이 찍혀 있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음식을 빠르게 볶아내고, 손님의 시선을 뺏기 위해 자극적인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덧입힌다. 요리의 본질인 '맛'보다 '효율'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의 우승자 최강록은 이 소란스러운 흐름을 정적으로 거슬렀다. 그는 자신을 '조림 인간' '조림핑' '연쇄 조림마'라고 칭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2026.01.19 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