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
연재기사 191개
배우, 감독 등의 삶, 연기, 해석, 사회적 파급 등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인터뷰 기사. 가십이나 홍보, 단순 소감 등을 배제하고 직업적 가치에 주목합니다. 때로는 인문학의 힘을 빌려 독자의 수월한 이해를 돕습니다.
차가운 얼굴에 숨긴 끓는점…신세경의 침묵은 비명보다 강했다
영화 '휴민트'는 총탄이 오가는 첩보전 속에서 집요할 정도로 한 여인의 얼굴을 파고든다. 배우 신세경이 연기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가장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품고 있다. 구출을 기다리는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단단한 삶의 의지를 품은 인물이다. 신세경은 "드라마틱한 비극 속에서 생(生)에 대한 열망이 가장 뜨거운 인물"이라 정의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
2026.02.13 15:00
이념이 휩쓸고 간 텅 빈 눈동자…그 속에 '순수'를 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살을 에는 칼바람, 그 삭막하고 건조한 동토 위에 한 사내가 고립돼 있다. 영화 '휴민트'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충실한 부속품이자, 이념으로 무장한 원칙주의자다. 류승완 감독은 견고한 그의 세계가 단 한 명의 존재로 인해 어떻게 균열이 일어나고, 끝내 붕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쫓는다. 박정민은 총을 든 첩보원의 비장미보다 내면이 무너져 내릴
2026.02.11 10:00
"욕하며 싸워도 밥상은 같이" 이희준이 파헤친 'K가족' 미스터리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때로는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 배우 이희준이 메가폰을 잡고 천착한 주제는 이 영원한 난제인 '가족'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중편영화 '직사각형, 삼각형'은 좁은 빌라 거실에 모인 한 가족의 소동극을 통해,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의 부조리를 유쾌하고도 서늘하게 해부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인간관계의 해법을 감성이 아닌 '도형'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모티브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2026.02.04 08:00
"도라미는 나를 지키는 좀비"…고윤정이 그린 슬픈 '자기방어'
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의 차무희(고윤정)는 자고 일어나니 톱스타가 된 신데렐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가 1000만 명을 돌파하고, 가는 곳마다 환대가 쏟아진다. 그러나 세상이 '대세'라 치켜세울수록, 내면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고윤정은 "행복과 불안은 공존한다"며 "가진 게 많아지면 그만큼 이 행복이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커지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이런 면면은 차무희의 자격지심에서 엿볼 수
2026.01.29 11:00
"죽임으로써 살려냈다"…유해진이 완성한 가장 처연한 '구원'
유해진의 얼굴은 늘 장르를 규정짓는 이정표였다. 입매가 올라가면 코미디, 미간이 좁혀지면 스릴러가 됐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 익숙한 도식은 지워졌다. 역사의 격랑 앞에 선 한 인간의 처연한 민얼굴을 드러낸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을 촌장 엄흥도다. 유배객을 유치해 부흥한 이웃 마을을 목격하고, 같은 방식으로 팔자를 고쳐보려 한다. 그러나 얄궂게도 첫 손님은 복권 가능성이 전무한 폐주(廢
2026.01.27 07:00
"계엄도 저항도 '애국'이라는 세상, 50년 전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요즘 뉴스를 보면 1970년대와 겹쳐 보인다.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애국, 그걸 막아서는 것도 애국이라 한다. 저마다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충돌한다. 이 애국의 카오스(혼란)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름 돋게 똑같다." 우민호 감독에게 1970년대와 2020년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영화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내놓은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중앙정보부 정보과장 백기태(
2026.01.21 10:21
13년을 바쳐 1% 더했다…최강록의 더딘 셈법
오늘날 요식업의 트렌드는 '속도'와 '자극'에 방점이 찍혀 있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음식을 빠르게 볶아내고, 손님의 시선을 뺏기 위해 자극적인 비주얼과 퍼포먼스를 덧입힌다. 요리의 본질인 '맛'보다 '효율'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의 우승자 최강록은 이 소란스러운 흐름을 정적으로 거슬렀다. 그는 자신을 '조림 인간' '조림핑' '연쇄 조림마'라고 칭했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2026.01.19 08:02
한국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챕터를 덮다
배우 안성기의 부고는 단순한 이별 통보가 아니다. 한국 영화사의 거대한 한 챕터가 닫히는 사건이다. 1950년대 데뷔부터 2020년대까지, 그는 한국 영화의 태동과 중흥, 르네상스를 온몸으로 관통한 유일한 증인이었다. 스크린 속 얼굴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억압된 시대의 울분이었고, 변화하는 사회의 욕망이었으며, 끝내 우리를 안아주는 위로였다. 천재 아역에서 '시대의 얼굴'로…한국적 리얼리즘의 탄생 안성기의 연기
2026.01.06 08:00
눈꺼풀 떨림 하나가 사건이 된다…김고은의 '정지된 연기'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 속 모은(김고은)은 서늘한 정적 그 자체다. 치과의사 부부를 살해한 뒤 그들의 아들마저 죽이려 기다리는 거실, 동작에는 한 치의 과잉도 없다. 나른한 얼굴로 일과처럼 침착하게 살인을 준비한다. 드라마는 이 명백한 악인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투명한 존재로 남겨두며 시청자를 시험한다. 배우 김고은은 이 모호한 심연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하며 극 전체의 공기를 지배한다.
2025.12.22 08:44
폭발 직전의 정지…도경수가 만든 ‘공백의 긴장’
"유치원생이 친구를 놀리듯이 웃어보자 생각하고 연기했다. 제 안에 그런 야비한 웃음이 있을 줄 몰랐다(웃음)." 디즈니+ 시리즈 '조각도시'에서 요한을 연기한 배우 도경수의 회고다. 요한은 권력자들의 범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을 물색하고, 사건의 증거를 조작하는 냉혈한이다. 주인공 태중(지창욱)도 그런 방식으로 감옥에 보내진 뒤, 요한의 손에서 놀잇감처럼 소비된다. 도경수는 요한을 단순하게 반응하는 인물로 설정했다
2025.12.15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