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당초 재계에서 요구했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벤처지주회사 활성화로 가닥을 잡았다.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하지만 재계뿐만 아니라 벤처업계도 이번 제도 개선으로 대기업의 벤처투자가 확대될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3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벤처지주의 자산총액 기준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줄이는 등 벤처지주회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대신 대기업들은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CVC 제도 도입을 요청해 왔다. CVC란 대규모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벤처캐피탈(VC)을 설립해 유망 벤처에 투자하는 제도로,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벤처투자 자회사 '구글 벤처스'가 대표적인 CVC다.
하지만 공정위는 금산분리 원칙을 내세워 CVC 도입 요구를 묵살했다. CVC를 금융회사가 아닌 것으로 간주해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역으로 금융지주회사가 CVC를 자회사로 보유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게 공정위 측의 입장이다. 지난 3월부터 공정거래법 개편 논의를 진행해 온 공정거래법 개편안 특위 역시 CVC 수용 거부 방침을 권고했다.
물론 이번 개편으로 벤처지주회사 제도가 한층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기업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을 인수해도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자산총액 요건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완화하고, 지주비율 산정시 벤처기업 외에도 연구개발(R&D)비 비중이 매출액 대비 5% 이상으로 높은 중소기업이 포함되도록 벤처자회사의 범위도 확대했다.
비계열사 주식 취득 제한을 폐지하고, 기존 지주회사가 벤처지주회사를 자·손자회사 단계에서 설립하는 경우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특례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벤처지주회사를 손자회사 단계에서 설립시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는 증손자회사가 되지만 100%가 아닌 50%만 지분을 보유해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지분보유 요건이 현행 20%를 유지하는 등, 규제가 완화됐다고는 해도 투자가 지주회사라는 제도의 틀에 묶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CVC 처럼 자유롭게 외부 자금을 끌어올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재계는 대기업들에게 큰 투자 유인이 생기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대기업들의 벤처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공정위가 조금 더 과감한 입장을 취했어야 했다"며 "CVC와 달리 벤처지주회사는 금융 기능이 없어 투자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벤처업계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정민 한국벤처기업협회 부소장은 "벤처기업 투자의 막힌 길을 풀어주는 대신 일종의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 준 셈인데, 문제는 이 길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거의 없다"며 "벤처업계는 2~3년 전부터 CVC 제도 도입을 요청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요청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는 "업계의 요청을 묵살하지 않고 벤처지주회사라는 대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한 것 같다"면서도 "벤처지주회사 제도가 대기업들의 투자를 확대시킬지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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