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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위 37도에서 내전중인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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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이 1도 밀려났다."

지난주 필자와 만난 현역 고급장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장교의 꽃이라 불리는 야전부대 현역 연대장(대령)의 말이기에 내가 모르는 남북의 우발적 충돌이라도 있었나 하여 귀를 기울였지만 결론은 허탈했다.
북위 37도는 대한민국 국회가 자리 잡고 있는 여의도를 말하는 것이었으니 그가 언급한 내전(內戰)은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벌어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국군기무사령부의 하극상을 바라보는 참담한 표현이었다. 국민의 눈에 비친 모습이 얼마나 참담했으면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뉴스의 중심에서 연일 보도되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폭로자로 지칭된 민병삼 대령을 '가미카제'라고 표현했을까.
연간 국민혈세 43조원을 넘게 사용하며 대한민국 최후 보루임을 자부하던 군(軍)의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 연평도가 폭격당할 때 고장으로 제대로 대응사격조차 할 수 없었던 K9 자주포는 2017년 폭발사고로 애꿎은 아군 생명을 앗아갔고 2018년 6월 마산함 폭발사고로 아까운 생명이 산화된 지 채 1달이 지나지 않아 10m쯤 날아오르다 프로펠러 날개가 통째로 뜯겨 날아가며 추락한 마린온 헬기 사고는 다섯 명의 생명을 앗아 갔으니 이쯤되면 땅, 바다, 하늘에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라는 군이 사이버사령부 댓글조작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는 범법 행위를 자행하고 군사보안과 국군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기무사가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는 듯한 문서를 작성한 것도 모자라 하극상이라 불릴 정도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사고가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필자는 공교롭게 기무사의 힘이 빠지던 1993년에도 청와대에 근무했고 2013년에도 청와대에 근무하며 참 대조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기무사령관의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웠던 1993년과 달리 2013년 청와대에서 기무사령관의 모습은 꽤 친숙하게 볼 수 있었다. 필자의 눈에 비친 기무사의 모습은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모습보다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역할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기무사의 부대이념인 '자유 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 민주체제 통일지원'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런 참상의 원인에 대해 기무사를 비롯한 군(軍)만을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치권력이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력이 맹목적 충성에 길들여졌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진 군을 자신들의 목적달성을 위해 이용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작금(昨今)에 군의 모습을 보면 유사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로 국난극복이 가능할지에 대한 불안감마저 엄습한다. 위정자들에게 부탁한다. "군을 제자리에 돌려놓자." 사이버사령부의 우수한 능력을 평상시 중요산업정보 해킹 대응에 활용하고 기무사의 뛰어난 방첩능력으로 다국적 테러가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지만 아직 휴전국가인 현실에서 로마의 전략가 베케리우스가 외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남산에 자리 잡은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왼손약지가 잘려 나간 결연한 손도장이 찍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유묵을 봤다. 할 수 있다면 사진액자를 만들어 이 나라 군인 모두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박관천 객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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