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로서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겠다는데 뭐라 할 것은 없다. 한데 국민 반응은 꼭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부정적 내용이 압도적이다. "입지도 않을 원피스를 사서 어떡할 거냐"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프집 미팅',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북 한 달 살이'와 같은 맥락으로 비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아홉 평짜리 옥탑방에서 지내는 박 시장 역시 구설이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연일 박 시장 거처에 출몰하고, 주민간담회를 여는데 전복죽을 대접했다 해서 '황제식사'니 뭐니 하며 야당과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민심 청취'를 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아무리 에누리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정치, 바람직한 정책을 세우기 위한 최선이냐는 데 이르면 의구심이 생긴다.
'미복잠행(微服潛行)'이란 게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야간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며 민심을 파악하던 방식이다. 명군으로 꼽히는 조선의 9대 왕 성종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19대 왕 숙종은 미복잠행 때 한 선비에게서 뇌물이 판치는 과거시험의 비리를 듣고 제도를 혁파했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이런 행사에서 걸리는 대목은 또 있다. 예로부터 활을 잘 쏘거나 칼을 잘 휘두른다 해서 명장이 되는 게 아니다. 사단장이 사격을 잘한다고 저격병을 시키는 군대는 없다. 지도자는 지도자의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담당자를 써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충분히 고민해 올바른 정치를 펴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몫이다.
이런 사실을 무릅쓰고 '이미지'을 연출하는 데 치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폴 크루그먼이 이름붙인 '포템킨 경제'가 떠오른다. 18세기 러시아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크림 반도 시찰에 나선다. 크림 반도 총독이던 그레고리 포템킨은 여제의 시찰 행로를 따라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풍요로운 가짜 마을을 세웠다. '포장'과 '연출'에 성공한 총독은 여제의 총애를 계속 받았지만 그 뒤 러시아제국의 운명은 역사가 증명한다.
집권층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제대로 된 민심을 알 수 없다. 김 부총리의 남대문시장 방문에 대한 댓글 중 눈길을 끈 게 있다. "일 좀 해라." 여기서 '일'은 '행사'를 뜻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게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꼭 봐야할 주요뉴스
"휴대폰 8시간 미사용" 긴급문자…유서 남긴 50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