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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쇼통'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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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꽈배기며 5000원짜리 원피스를 사면서 상인들의 고충을 들었다고 했다. 취재진에게 사전예고도 않은, '즉흥적'으로 결정한 방문이었단다.

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로서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겠다는데 뭐라 할 것은 없다. 한데 국민 반응은 꼭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부정적 내용이 압도적이다. "입지도 않을 원피스를 사서 어떡할 거냐"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프집 미팅',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북 한 달 살이'와 같은 맥락으로 비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 있는 호프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대통령과 만나는 줄 모르고 참석한 아파트 경비원 등과 최저임금제 등 경제사회적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만난 청년 구직자가 다시 참석한 것이 드러나면서 '연출' 논란에 휩싸여 야당에선 "소통이 아니라 '쇼통'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아홉 평짜리 옥탑방에서 지내는 박 시장 역시 구설이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연일 박 시장 거처에 출몰하고, 주민간담회를 여는데 전복죽을 대접했다 해서 '황제식사'니 뭐니 하며 야당과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민심 청취'를 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아무리 에누리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정치, 바람직한 정책을 세우기 위한 최선이냐는 데 이르면 의구심이 생긴다.

'미복잠행(微服潛行)'이란 게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야간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며 민심을 파악하던 방식이다. 명군으로 꼽히는 조선의 9대 왕 성종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19대 왕 숙종은 미복잠행 때 한 선비에게서 뇌물이 판치는 과거시험의 비리를 듣고 제도를 혁파했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민정 시찰, 현장 경영의 방식이다. 영상 미디어란 게 없었을 때이니 용안(龍顔)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터인데도 성종이나 숙종은 본모습을 감춘 채 측근을 대동하지 않고 민심을 살폈다. 만날 사람을 미리 정하거나, 거창한 수행원을 거느리면 제대로 된 민심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을까. 비록 대통령이나 부총리, 서울시장의 얼굴이 친숙한 21세기라도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민심의 실체에 다가가는 방법이 없었을까.

이런 행사에서 걸리는 대목은 또 있다. 예로부터 활을 잘 쏘거나 칼을 잘 휘두른다 해서 명장이 되는 게 아니다. 사단장이 사격을 잘한다고 저격병을 시키는 군대는 없다. 지도자는 지도자의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담당자를 써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충분히 고민해 올바른 정치를 펴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몫이다.

이런 사실을 무릅쓰고 '이미지'을 연출하는 데 치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폴 크루그먼이 이름붙인 '포템킨 경제'가 떠오른다. 18세기 러시아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크림 반도 시찰에 나선다. 크림 반도 총독이던 그레고리 포템킨은 여제의 시찰 행로를 따라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풍요로운 가짜 마을을 세웠다. '포장'과 '연출'에 성공한 총독은 여제의 총애를 계속 받았지만 그 뒤 러시아제국의 운명은 역사가 증명한다.

집권층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제대로 된 민심을 알 수 없다. 김 부총리의 남대문시장 방문에 대한 댓글 중 눈길을 끈 게 있다. "일 좀 해라." 여기서 '일'은 '행사'를 뜻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게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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