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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체칠리엔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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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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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포츠담에 있는 체칠리엔호프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곳은 궁전인데,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가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게 지어주었다. 황태자비의 이름이 체칠리에(Cecilie)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마지막 궁전으로 1917년에 다 지었다. 목재와 기와로 마감한 2층(일부는 3층) 건물로, 궁전치고는 조금 작다. 오늘날 호텔과 레스토랑이 들어가 궁전호텔(Schlosshotel)이 되었다.

궁전이 들어선 신정원(Neuen Garten)은 숲이 우거지고 흙길에 민달팽이가 지천이다. 그래서 아들 부부가 동화 속의 정원에서 행복하기 바랐을 아버지의 사랑을 짐작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이 궁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역사와 숙명으로 직결된다.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두 달이 지난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이곳에서 포츠담 회담이 열렸다. 그 결과물이 포츠담 선언이다. 일본의 항복을 요구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고 있다. 일본은 항복을 거부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지자 손을 들었다.
한국의 독립은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카이로 회담에서 결정되었다. 미국과 영국, 중국 등 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1943년 11월 23일 오후 8시에 중국의 장제스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만찬을 하면서 '한국 독립'을 안건으로 제시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이튿날 카이로 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른 시기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가 될 것임을 결의한다.' 그러나 영국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기를 꺼렸다. 인도ㆍ버마 등 아시아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짜가 어디 있으랴. 이때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남북으로 가르는 밀약을 했다고 한다. '포츠담 밀약설'이다. 그러니 포츠담 회담은 한반도의 분단과 동족상잔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조선과 필리핀을 나눠 갖기로 한 가쓰라 태프트 밀약(1905)처럼 우리가 빠진 회담과 선언은 역사의 멍에가 되기 일쑤다.

정치는 언어의 노동이다. 고상한 언어를 말해도 근본을 탐욕에 두면 협잡일 수밖에 없다. 외교가 국제 정치의 양식이라면 이 또한 언어의 가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두리 안에서 강-약, 중강-약, 약-약과 같은, 힘과 크기를 달리하는 자들이 마주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강-강의 언어는 결정하는 자들의 언어다. 그들은 주어(主語)를 사용한다. 재갈을 문 채 처분을 기다리는 자들의 언어는 주어가 아니다. 냉혹한 진실과 비극의 씨앗이 여기에 있다.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벌어지는 담판은 한반도의 주인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기회일지 모른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섬광과도 같은 순간이다. 그러니 주인의 언어로 말할지어다. 남북 모두 주어를 사용해서 말해야 한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판문점의 만남에서 힘을 얻었기를. 우리는 두 차례나 '통역 없는 정상회담'을 보지 않았나. 그 뜨거운 입맞춤을 보지 않았나.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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