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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외팔이 신 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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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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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토마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했을까? 토마스는 예수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제 스승의 부활을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굳이 손을 넣어 확인해 보라고 한다. 로마의 성당 입구에 걸린 진실의 입. 강의 신 홀르비오는 왜 거짓말쟁이의 손목을 덥썩 물어 베어버리는 걸까? 인간의 언어는 세치 혀를 놀려 주고받는 일이다. 그러니 진실을 감추고 속여 말하는 자는 혀를 베어버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왜 손인가?

손목을 베면 손이 몸에서 떨어져 나온다. 손이 생명을 잃는 것이다. 또한 그 몸의 남은 삶도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손이 무엇이기에 성경 속에서 눈(目)과 같은 의무를 지는가. 손의 결핍은 장애인 동시에 신성(神性)을 내포하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티르(Tyr)는 전쟁의 신이자 재판과 맹세의 신이다. 그런데 맹세를 할 때 들어 올려야 할 오른손이 없다. 즉 외팔이 신이다. 북유럽의 신들 가운데 티르처럼 장애가 있는 신이 적잖다. 신 중의 신 오딘(Odin)은 외눈박이다. 티르는 어쩌다 오른손을 잃었을까. 사연이 있다.
신들이 난폭한 늑대 펜리르(Fenrir)에 시달리다 못해 쇠사슬로 묶으려 한다. 그러나 펜리르는 번번이 사슬을 끊어버린다. 그러자 오딘이 뛰어난 대장장이이자 마법사인 난쟁이 드베르그(Dvergr)에게 명하여 글레이프니르(Gleipnir)를 만들게 한다. 글레이프니르는 겉보기엔 보잘것없는 끈 같지만 어떤 무기로도 끊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재료는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 여자의 콧수염, 곰의 힘줄, 산의 뿌리, 물고기의 숨과 새의 침이다.

신들은 펜리르에게 글레이프니르를 보이며 "곧 풀어줄 테니 한번 몸에 둘러 보라"고 한다. 펜리르가 의심하자 티르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오른손을 그의 아가리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펜리르는 이내 신들의 계략을 알아채고 분노하여 티르의 오른손을 물어뜯어 삼켜버린다. 거대하고도 난폭한 펜리르를 묶는 데 티르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야성의 포박이 지성의 승리라면 티르는 진리의 제단에 제 오른손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티르의 희생은 달마와 혜가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인도 승려 달마가 9년 면벽을 한다. 수많은 수행자가 찾아와 배우기를 청하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어느 날 젊은 수행자가 달마를 찾아왔다. 그는 한쪽 팔을 잘라 달마에게 던진다. "당신이 돌아앉지 않는다면 내 머리를 잘라 던지리라." 달마가 돌아앉는다. "머리를 자르지 마라. 그걸 써야 한다." 혜가가 달마의 제자가 되니 마침내 승찬-도신-홍인-혜능 등 6대 조사로 이어진 중국 불교의 부흥이다.
때로 손은 눈을 대신한다. 시력을 잃은 사람은 손끝으로 점자를 읽어 지식을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더듬어 윤곽을 헤아린다. 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겨 길을 찾는다. 입말을 잊은 사람은 수화(手話)로 뜻을 통한다. 손금을 읽어 그 사람의 지난 삶을 짐작하고 훗날을 예언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손은 그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토록 가슴 두근거리며 그이의 손을 잡고자 하지 않았는가. 비틀스, I wanna hold your hand!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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