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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로맹 가리 삶과 문학…'여성성에 대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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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기 몇 달 전 라디오방송에서 한 인터뷰 녹취록 '내 삶의 의미'

로맹가리, '내 삶의 의미'

로맹가리, '내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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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나의 모든 책, 내가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쓴 그 모든 것에 영감을 준 것은 여성성, 여성성에 대한 나의 열정입니다."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 로맹 가리(1914~1980). 그가 예순 여섯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몇 달 전 캐나다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얘기다. 그리고 이를 녹취한 내용이 최근 책으로 발간됐다. 문학계 내에서의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곡절 많았던 그의 삶이 130페이지 짧은 글 속에 조곤조곤 담겼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전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로맹 가리의 인생에 헌신적이었던 어머니가, 그리고 여성성이 얼마나 지대하게 영향을 끼쳤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는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혁명기를 지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 니스에 열 네살에 정착하게 됐다. 프랑스를 동경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위대한 작가, 프랑사 대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군대에서 문학계, 외교계, 영화계에서 삶의 여정을 보냈다. 모친의 바람대로 장교도 되고, 작가도 되고, 대사도 됐다. 그는 러시아, 폴란드, 프랑스, 미국까지 "문화를 네 번 갈아탔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드골 장군과의 재밌는 일화를 알려줬다. 카멜레온이 빨간 양탄자에 올려놓으면 빨간색으로, 초록 양탄자 위에선 초록생, 노란 양탄자에선 노란색으로 변하는데 알록달록한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천에 올려놓으니 미쳐버리더라는 얘기를 들은 드골이 로맹가리에게 했던 말이다. "자네 경우엔 미치지 않고 프랑스 작가가 된 거로군."

그는 스스로를 타고난 소수자로 칭했다. 좌파든 우파든 다수의 강한 자들에게 반대한다고 할 만큼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섰다. 여성성과 인권에 대한 예찬도 이와 연결된다. 그에게 공쿠르 상을 안긴 '하늘의 뿌리'역시 생태학적인 시각을 넘어 인권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로맹 가리는 “코끼리는 곧 인권”이라며 “서툴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셔서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는 존재, 진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라고 했다.
그는 1935년 '그랭구아르'에 단편소설 '소나기'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전쟁 중에 써서 영국에서 출간하고 1945년에 프랑스에서 다시 출간한 '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프랑스 외무부에 들어가 불가리아, 스위스, 볼리비아, 미국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1964년에는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로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1975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공쿠르 상을 또 한번 받았다. 의심과 추적을 완벽하게 따돌리던 이중생활은 그가 1980년 12월 2일 자살을 한 뒤 그의 유고에 의해 밝혀지며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새벽의 약속', '거대한 옷장' '레이디 L', '흰 개' 등 3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에세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은 영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킬'을 남겼다.

(로맹 가리 지음/백선희 옮김/문학과지성사/1만원)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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