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전 세계 미술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경매마다 낙찰가는 치솟고 언론들은 이를 경쟁하듯 소개한다. 하지만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미술품 경매시장의 환경이 변화한 탓이다.
올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대 최고가인 1억7940만달러에 낙찰됐다. 지난달 17~20일 나흘 동안 진행된 경매에서 크리스티의 매출은 사상 최고 기록인 17억달러로 집계됐다. 그중 하루는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7억600만달러어치의 예술품이 팔려나갔다. 소더비 경매는 6월 3, 4주에 걸쳐 크리스티 경매 규모의 절반 정도인 8억9000만달러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그쳤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성과다.
크리스티는 2013년 11월 미국 현대작가 제프 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를 5840만달러에 팔았다. 크리스티가 상당한 돈을 벌었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의 소유자에게 목표 가격에 도달하지 못하면 판매자가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까지 내주기로 약속했다. 크리스티는 풍선개와 함께 경매대에 오른 다른 작품을 통해서만 이익을 냈다. 풍선개는 콜렉터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659억원짜리 미끼상품이었던 셈이다.
판매자에게 보장한 낙찰가에 미달하면 수수료도 못 받고 오히려 부족분을 물어 줘야 하는 일도 생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헤지펀드 SAC캐피털 설립자이자 아트 컬렉터로 유명한 스티븐 코언이 조각가 베르토 자코메티의 1950년작 마차(Chariot)를 뉴욕 소더비에서 1억100만달러에 낙찰받았다. 이 경매에서 소더비는 2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 작품을 판 알렉산더 고란드리스에게 1억300만달러의 가격을 보증했기 때문이다. 연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소더비는 2011년과 2012년에만 각각 4000만달러 규모의 커미션 수수료를 포기하기도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술품이 탈세와 돈세탁에 사용된다고 우려하며 미술품시장을 "내부 정보에 의해 거래되는 시장"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값이 수백만 달러나 되는 작품을 구입 시 신원 확인도 없고 해외 반출도 추적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술계는 루비니의 주장이 과장됐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 재벌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가문이 구입한 미술품 관련 구설수는 미술시장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예다. 모나코 경찰당국은 지난 2월 저명한 미술품 거래상 이브 부비에를 미술품 가격 조작과 돈세탁 혐의로 체포됐다. 부비에는 리볼로프레프 가문의 외뢰를 받아 미술품을 구입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을 지불한 사실이 들통났다. 리볼로프레프 신탁은 스티븐 코언이 9350만달러에 부비에를 거쳐 판매한 모딜리아니의 '파란 쿠션을 베고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Nu Couche au Coussin Bleu)'를 1억1180만달러에 사들였다. 같은 작품의 가격에 2000만달러 이상의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리볼로프레프 가문이 이런 식으로 구입한 미술품의 상당수는 '프리포트'라 불리는 최상의 보안 시설을 갖춘 면세지역 보관실에서 저장돼 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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