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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총 대신 봉사를 선택한 사회복무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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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박혜성(23)

사회복무요원 박혜성(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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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내 이름은 박혜성(23). 사람들은 나를 흔히 '공익요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공식명칭은 '사회복무요원'이다. 주변사람들에게 "공익은 없어진 용어"라고 말해줘도 인식은 쉽게 변하지가 않는다. 사실 하사관이라는 명칭을 부사관으로 바꾼지 한참됐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하사관이라고 부르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뜻밖의 결과를 받았다. 친구들은 모두 현역판정이 났지만 나만 신장이 좋지 않았던 탓에 4급 판정을 받았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군 입대를 해야 할 쯤 나도 복무할 곳을 결정해야만 했다. 이때 눈에 띄는 기관이 있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남광종합사회복지관이다. 지역 내 저소득계층이나 독거어르신, 장애인세대, 소년소녀가장, 결손가정 등 사회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지원하는 곳이다. 군복무 대신 여기서 24개월간 근무를 하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를 운영해온 아버지를 지켜봐왔던 탓에 봉사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 그리고 꼭 알리고 싶은 한가지. 사회복무요원이란 명칭만큼 우리들이 군사훈련을 받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역들과 똑같이 해운대에 위치한 53사단에서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복지관의 첫 출근은 지난해 4월이다. 이곳에 온 후 5일간 직무교육도 받았다. 교육 내내 '봉사'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되풀이 됐다.

첫 출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친조부모 외에는 어르신들에게 이야기를 걸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꽤나 낯설었다. 그래도 도움을 준 동료들이 있었다. 이 곳에는 나와 같은 사회복무요원 4명이 같이 근무하고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지난해 기준 부산지역 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만 973명, 전국에는 2만 6000여명이 넘는다. 불가피하게 전방근무를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통계이기도 하다.

임무는 간단치 않다. 출근 전에는 그저 어르신들 말동무나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지만 첫 출근 날부터 예상은 완전히 벗어났다. 복지관에는 주간에 보호를 받는 어르신들만 40여명, 24시간 보호를 받는 어르신들도 15명이 계셨다. 노인대학에 강좌를 받는 노인분들까지 합하면 족히 40여명이 넘었다. 이분들에게 매 끼니마다 식사를 챙겨 드려야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은 신발도 직접 신켜드려야 한다. 특히 복지관에 계신 노인분들 절반이상은 치매증상이 있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복무를 한지 1년이 지나면서 정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도 하나 둘 늘어났다. 나를 볼 때마다 손주같다며 엉덩이를 토닥거려주기도 한다. 얼마전 김 모 할머니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치매를 심하게 앓고 있는 김 할머니는 항상 알아듯지 못하는 말만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그동안 정신없는 나를 챙겨주어서 고맙고 제 정신일 때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며 "군대 간 손주보다 낫다"며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이후 김 할머니는 이 말을 기억하지 못한 채 예전으로 모습으로 돌아갔다. 김 할머니는 알고 계셨다. 자신이 누군가의 진심어린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걸.

현역으로 군복무한 친구들을 가끔 만났을 때 "집에서 출퇴근하는 네가 부럽다"고 말하면 항상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나 김 할머니처럼 될 수 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들에게 보살핌을 주는 일이 전방 경계근무만큼 소중한 일이라고 말이다.

퇴근 후에도 쉴 틈이 많지는 않다. 현역병들도 요즈음은 군 복무 기간 중 학점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뒤질 수 없기 때문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1년을 다니다 휴학한 상황이라서 최근 작곡에 빠져있다. 현역병과 똑같은 월급을 받아 허투루 쓰지 않고 스피커 등 작곡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적금을 들기도 했다. 작곡은 쉽지 않지만 저녁에 혼자 계시며 쓸쓸해 하실 김 할머니를 생각해 본다. 할머니들이 듣고 방긋 미소지을 멋진 곡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이 글은 박혜성씨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기자가 재정리한 것입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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