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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근혜차벽'…벽치고 입막는 정권의 위기대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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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문화제'를 마친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버스가 이들을 막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 DB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문화제'를 마친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버스가 이들을 막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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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세월호 1주기를 맞은 16일,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차벽'이 등장했다. 세월호 추모 집회 적극 대응방침을 밝힌 경찰의 친절한 '예고'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시민의 행진을 가로막은 차벽, 불과 몇년 전 이순신 동상 앞을 배경으로 벌어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이다. 달라진 점은 '콘테이너 박스'가 '경찰버스'로 바뀐 정도. 활용도구는 달랐지만 도로 위에 거대한 벽을 쌓아 시민의 입을 막겠다는 정권의 위기대응 방식은 비슷하다.
차벽은 이날 오후 세월호 1주기 추모제가 열린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둘러쳐졌다. 시청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참가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동원한 버스는 50대가량.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이 설치됐다.

경찰은 버스 간격을 촘촘히 해 종잇장만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전선을 구축했다. 이날 주최 측이 추산한 집회 참여 인원은 5만명. 버스에 가로막혀 집회 참가 시민들의 통행은 전면 봉쇄됐다.
경찰이 투입한 인원은 130개 중대 1만3000명 정도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 참가 인원이 9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시민 1명당 1.4명의 공권력이 투입된 셈이다.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세월호 1주기 추모제 참가 시민들. 사진=아시아경제 DB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세월호 1주기 추모제 참가 시민들.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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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과격·폭력 시위를 우려해 엄청난 경력에 더해 차벽까지 설치했다는 입장이지만, 시위 전부터 경찰 버스는 광화문 일대로 속속 모여들었다. 집회의 과격성과는 상관없이 차벽 설치는 예정돼 있었단 얘기다.

대규모 인력으로도 시위대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란 '겸손한 판단'을 한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탄도 발사했다.

차벽과 최루탄에 막힌 시민들은 경찰의 대응에 계란을 던지거나 버스를 발로 차며 항의했고, 현장을 기록한 사진에는 '항의하는 시민vs어쩔수 없이 막아서는 경찰'의 구도가 잡혔다. 경찰에 떠밀린 세월호 유가족 권남희(43·여)씨가 병원으로 호송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의 원천봉쇄 아래 일반 시민의 통행도 가로막혔다. 종각역 근처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조모(32)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소지까지 대며 길을 터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통행을 허가해 줄 수 없다고 되풀이하며 돌아가라는 말만 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이어 "사방이 막혔는데 어디로 돌아가야 할 지를 몰라 한참을 돌다 한 호텔에 겨우 방을 구해 묵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2008년 시위대 행진을 막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명박산성'. 사진=아시아경제 DB

2008년 시위대 행진을 막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명박산성'.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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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광화문엔 '명박산성'이 쌓였다. 2008년 이명박 정권 당시 경찰은 바리케이드로 써온 전경버스가 파손됐다며 콘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아올린 새로운 개념의 바리케이드를 선보였다.

민주화항쟁 21주년과 미국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집회가 겹쳐 대규모 시위가 잡혀있던 6월 10일, 이 콘테이너 박스는 빛을 발했다. 경찰은 60여개의 콘테이너를 철심으로 고정하고 용접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명박산성'에 대응하기 위한 '국민토성'을 만들기도 했다. 트럭 두 대 분량의 모래를 준비해 컨테이너 앞에 쌓아 이를 밟고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밤 늦게 완성된 국민토성을 밟고 시위대 50여명이 깃발을 들고 컨테이너 꼭대기를 밟았다.

'명박산성'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CNN과 뉴욕타임스, BBC를 비롯 로이터, 블룸버그, AP 통신 등도 잇달아 한국의 '웃지 못할 상황'을 보도했다. 3년 후인 2011년 헌법재판소는 '명박산성'에 대해 "국민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5년과 2008년, 서로 다른 두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닮은 점은 또 있다.

2008년 5월15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던 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불과 한달 후 '명박산성'으로 응답했다.

2015년 4월 17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가장 진정성 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고민했다'며 유가족이 모두 떠난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나홀로' 담화문을 읊었다. 몇 시간 후 대통령은 예정대로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이 떠난 청와대를 향해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고, '차벽'과 '캡사이신'을 마주하며 정권과 소통해야 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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