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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햇살 한 올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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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의 머리 위에도, 절망의 밤을 보낸 자의 창문에도, 해가 뜬다. 어두울수록 빛은 영롱하다. 겨울일수록 햇살은 따뜻하며 눈물을 흘린 자의 뺨에 비친 빛줄기여야 흘린 영혼을 닦아낸다. 모든 존재에게 딱 하나의 태양이 떠올라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빛을 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대자연의 한결같은 무심이란, 때론 위대한 은총과 자비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헐벗은 이라 할지라도 오늘의 햇살은 공평하게 받으니, 절망하는 자에게 이보다 더한 후광이 어디 있으랴.

이 아름다운 찰나. 시간이 만들어놓은 주름살과 분노와 질병과 어리석음 위에 다시 한 줄기 햇살을 추가하며, 우리는 지금쯤 죽음으로 환해지는 자리들을 좀 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내것이 아닌 것들을 욕심내지 않으며, 나를 반대하는 자들, 부질없이 성내는 자들, 거리에 우는 자들, 헐벗고 아프고 병든 자들, 내몰린 자들, 서러운 겨울들을 가만히 품어야 하지 않을까.
태어난 일이야 뭐라고 말한다 해도 고마운 일이다. 힘겹고 두렵고 서러워도 힘겹고 두렵고 서러움을 느끼는 그 몸과 마음을 한번은 가져보았다는 것은 고마움이 아니던가. 그리고 고마움은 뒤집어보면 모두 미안함들이 아니던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죽여가며 살아있어야 하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망치며 생활해야 하고, 누군가를 부지런히 괴롭히며 돌아다녀야 하지 않던가. 고마운 일도 고맙다 말하지 않고 지나쳐 왔고 미안한 일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성난 얼굴로 등을 돌려 걸어오지 않았던가.

햇살 한 줄기 이마에 떨어질 때, 이때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햇살 여전히 내가 받을 수 있는 일의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간 내가 한 잘못과 어리석음,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오만과 경솔, 방탕과 무심, 그리고 우행을 가만히 새겨보노라면, 공짜로 떨어진 횡재같은 햇살 한 줌이 너무 달콤하여 먹먹해지는 이 아침에.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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