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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자영업자 혁신 없는 대형마트 규제, 효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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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나는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유학생 가족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세타가야구는 공원이 많은 조용한 주택가로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살고 있었던 유명한 동네였다. 매주 일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앞 핸들에는 의자를 달아 큰딸을 태우고 세이유에 갔다. 세이유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마트나 롯데마트 정도 된다. 일본 전역에 370개 점포를 가지고 있고, 6200억엔의 매출(한화 약 7조원)이니 이마트의 141개 점포, 매출액 11조원에 비하면 3분의 2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세이유는 종합 슈퍼이기 때문에 계란, 우유에서 채소, 의류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또 가격도 무척이나 쌌기 때문에 일요일에 가면 동네 주부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내 아내는 특이한 구매 패턴이 있었다. 세이유에서 우유나 치즈 같은 가공식품을 사고, 과일이나 채소는 세이유 바로 앞 구멍가게에서 사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가게지 한 10평쯤 되는 공간에 채소나 과일박스가 빙 둘러 진열돼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들어가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 출구에서 계산하는, 그것도 현금만 받는 지극히 불편한 구조였다. 한 사람이 통로에 서 있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없어 사과를 사고 싶은데 이미 지나간 자리에 있으면 다시 한 바퀴를 빙 돌아 와야 하는 가게였다. 더구나 세이유에서 이미 일주일치 식료품을 가득 샀으므로 여러 개의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다니거나, 밖에서 누군가가 봉지를 들고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게에 항상 주부들이 가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일이 신선하고 너무 싸거든" 아내의 말이었다.
그랬다. 옆의 세이유에서 150엔 하는 사과를 이 가게에서는 100엔에 팔고 있었다. 이른바 '메다마쇼힝'(미끼상품)이었다. 하지만 배나 수박 같은 다른 과일이나 채소도 세이유보다 싱싱하고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한 번은 그 가게 주인에게 어디서 이렇게 싼 사과를 가져 오는지 물어 보았다. 그 주인은 피식 웃고 대답했다. "그건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이 채소가게 때문에 세이유의 과일과 야채 코너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었다. 사는 사람이 없으니 제품 회전율이 떨어지고, 제품 회전율이 떨어지니 채소의 신선도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세이유로서는 대안이 없어 보였다. 구매 담당자는 별 의욕이 없어 보였고, 본사를 통해서 들어오는 복잡한 구매 경로 때문에 바로 당일 새벽에 어딘가에 가서 과일을 들여오는 옆 구멍가게를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강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강육약식'의 경제학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구멍가게 때문은 아니겠지만 세이유는 실적 감소에 고전하다 결국 미국 월마트에 매각되었다.

최근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대형마트 규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강제적으로 대형마트가 휴무하는 날에도 골목상권 가게들의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 정책적 실패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패는 '강육약식'이 가능한 경쟁구조를 만들지 않은 데 있다. 만일 구멍가게의 채소나 과일이 세이유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떨어진다면 일본 주부들이 그 가게로 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구멍가게가 품질이나 가격에서 대형마트에 밀린다면 거기로 갈 소비자는 없다. 대형마트를 강제적으로 문 닫게 하면 그 수요가 자동적으로 소규모 가게로 흘러간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세타가야구의 주부들은 세이유의 휴무일을 귀신 같이 꿰고 있었다.
'강육약식'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세이유를 압도한 구멍가게의 신화는 바로 유통과 구매과정의 혁신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대형마트 논란에는 바로 이 점이 결여되어 있다. 아무리 대형마트 영업일을 규제해 보아야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혁신 없이는 도로아미타불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영업자들의 혁신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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