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저를 살렸습니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 제게 정작 중요한 건 밥이 아니라 인문학이란 걸 알았습니다."
지금 인문학 운동은 노숙인에서부터 자활 참여자, 재소자, 여성 주부, 노인, 미혼모, 탈학교 청소년 등 대다수 세상의 '잉여'들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부자나 힘 있는 자들을 위한 인문학은 보이지 않는다. 잉여들의 밥상에만 밥 대신 인문학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잉여들이 인문학을 배부를 만큼 맘껏 누리는 시절이 됐다.
'한손에 인문학을, 또 한손에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정부와 학자들이 이때다 싶어 블록버스터 한 편 만들 듯, 인문학 운동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인문ㆍ정신문화과를 신설하는 등 인문학 진흥정책을 주도하러 나섰다. 각종 유휴시설을 활용,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일상 속 인문학' 확산을 꾀한다며 난리법석이다. 인문ㆍ정신문화진흥법도 제정할 태세다. 인문학이 국가 이념인 듯, 최고 통치자도 언급하기 일쑤다.
국가의 개입, 학계의 지나친 관심, 학문의 편중이 오히려 다 나은 삶을 위한 각성,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상호부조의 믿음, 연대와 소통, 합리적 경제활동 등 우리 정신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국가 주도의 정신 운동이 항상 실패로 끝났다는 것은 사례를 일일이 꼽지 않더라도 역사가 검증한다. 이는 국가와 학자들의 일사분란한 개입에는 어떤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인문학을 거부해서도, 중요함을 몰라서 우려해서도 아니다. 광풍이 인문학 본연의 비판적 힘을 무너뜨리지 않는지 걱정스러워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운동이 여러 지식공동체의 기획, 시대적 요구,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넘실댄다면 누가 어깃장을 놓겠는가?
그래서 진정한 인문학 세상이 도래하고 국민이 더 행복해진다면 참으로 춤추고 반길 일이다. 다같이 웃고 즐기는 인문학, 제대로 시장을 경유한 인문학, 삶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인문학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할 따름이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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