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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못피게 한다고 직원 구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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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시행된 새 금연구역 유명무실

▲ 지난달 8일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병원, 도서관 등에서 현재까지 흡연자들에 대한 제재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 지난달 8일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병원, 도서관 등에서 현재까지 흡연자들에 대한 제재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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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남녀 할 것 없이 장례식장 안팎에서 담배를 피웁니다. 담배 피우는 걸 제지하다 조문객한테 맞은 직원도 있습니다".

지난달 8일부터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으로 병원, 도서관 등 공중이용시설 전역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한 달 보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이들 시설의 법규 이행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흡연자들의 인식 개선 역시 요원했다.
지난 21일 찾아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선 재떨이를 아예 건물 안으로 들여놨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실내에 완벽히 밀폐된 흡연실을 설치하거나 건물에서 10m 이상 떨어진 곳에 옥외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다.

병원 관계자는 "원래는 식장에서 재떨이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데 비가 와서 안으로 들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렇게라도 안하면 식장 입구 바닥이 담배꽁초로 온통 난장판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병원이나 부설 장례식장은 전혀 개선이 안된다"며 "직원의 제지와 조문객들의 항의가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강북삼성병원 옆에 있는 적십자병원도 사정이 비슷했다. 흡연이 원천 금지돼 있는 병원 주차장을 유유히 담배를 피우며 가로지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장례식장 입구는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식장 입구 계단에는 중년 남성 3명이 잡담을 나누며 줄담배를 피우고 재떨이에 가래침을 뱉었다.
독립문에 있는 세란병원은 대로변에 접한 응급실 입구 옆으로 담배꽁초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별도의 쓰레기통이 없어 급하게 담배를 핀 후 그대로 꽁초를 버리고 응급실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흡연자들의 불평 역시 만만찮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한 조문객은 "비흡연자의 권리 존중도 중요하지만 방문객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장례식장을 금연장소로 지정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구에 위치한 백병원은 주차장 입구에 흡연 구역을 따로 마련해 뒀지만 병원 입구쪽에 오가는 환자들이 담배연기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였다.

공공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은 지난달 열람동 건물 사이에 있던 흡연구역을 없애고 건물 앞마당을 비롯한 관내 전 지역을 금연구역으로 규정했다. 도서관 복도와 앞마당 곳곳에 금연 팻말을 설치했으나 별 효과를 못보고 있다.

정독도서관에선 시설 관리 직원이 순시를 돌며 관내에서 흡연하는 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지만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제때 제지하진 못했다.

한 청소 직원은 "젊은 남녀가 도서관 건물에서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며 "눈이 녹고 나니 곳곳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수북이 나왔다"고 말했다.

정독도서관은 현재 옥외 흡연실도 갖춰지지 않았다. 건물 사이 벤치에 앉아있던 재수생 김모씨(20)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차라리 어디 한곳을 흡연구역으로 지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흡연구역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오히려 관내 아무데서나 담배를 핀다는 것이다.

김씨는 "흡연구역을 지정해 놓았다면 거기서만 피웠을 것"이라며 "잠시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려 해도 옆에 사람들이 와서 담배를 피우면 냄새를 그대로 맡게 된다"고 말했다.

정독 도서관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정모(52)씨는 "담배를 사며 별도의 세금까지 내는데 국가가 몇 평 되지 않는 흡연구역도 허가하지 않는 건 부당한 처사"라고 했다.

도서관 정문 앞에서 흡연 중이던 조 모(54)씨는 금연정책에 동감을 표시하면서도 불편이 크다고 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그는 가방에 공부하던 책을 넣은 가방을 들고 약 100 m를 걸어가 도서관 입구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근처에 휴지통이 없어 조씨는 담배를 다 피운 후 꽁초를 들고 다시 도서관에 들어갔다.

정독 도서관 관계자는 "시설 관리자들이 관내 흡연자들을 계도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며 "올 4월 도서관 입구쪽 종친부 정비가 끝난 이후 옥외흡연실 설치 등 대책을 강구중"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 권형원 사무관은 "도서관 금연구역 지정은 유아·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의 간접흡연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라며 개정 취지를 이해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또 "장례식장은 (손님들의 항의 등) 극단적인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차차 의식개선이 될 것으로 본다"며 "금연구역 중 취약한 곳에 대해 올 2분기부터 지자체와 합동 단속을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에서 지난해 지하상점가나 철도역 등 흡연이 금지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개인 사례는 1030건 정도이다. 병원, 도서관 등 새로 포함된 금연구역은 오는 6월까지 계도기간을 거쳐 법규 위반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의 단속을 하게 된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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