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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고창환의 '만종(晩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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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엿 파는 젊은 부부/외진 길가에 손수레 세워놓고/열심히 호박엿 자른다/사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어쩌자고 자꾸 잘라내는 것일까/그을린 사내 얼굴/타다 만 저 들판 닮았다/한솥 가득 끓어올랐을 엿빛으로/어린 아내의 볼 달아오른다/(......)/그들이 잘라내는 적막한 꿈들/챙강대는 가위 소리/저녁 공기 틈새로 둥글게 퍼진다

■ 밀레의 그림 '만종'은 저녁답 밭에서 일하던 농부부부가 종소리가 울리자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렸다. 호박엿 파는 부부가 팔리지도 않는 호박엿을 자르는 가위소리가 '만종'이 될 때,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은은히 감도는 노동의 성스러움이 있다. 엿판 주위를 떠나지 않는 부부의 그 말없는 노동만으로도, 절절히 다 얘기된 사랑의 스토리가 있다. 충무로 아시아경제 건물 뒤쪽 거리엔 늘 호박엿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사는 사람도 보이지 않건만 그 또한 묵묵히 뚝뚝 엿을 자른다. '너 엿 먹을래?'하고 옆사람에게 농담을 던져놓고 낄낄거리며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그는 아내도 없는 엿판을 들여다보며 이 늦가을 엿같은 시간을 마디마디 토막내고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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