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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깔딱고개 선 정부, 개미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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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도가 시행되던 주말. 빨래는 쌓여있고 세제는 바닥이 났다. 집 앞 슈퍼마켓에 가서 드럼용 세탁기 세제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대에 가니 1만2000원이란다. 그 다음 주말 대형마트에서 본 동일 브랜드, 같은 용량의 제품은 8900원. 3100원의 차이가 났고 약 34%의 손실을 본 셈이다.

이 사소한 일을 조금 과장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돈의 가치 왜곡과 직결된다. 내 돈 1만원의 가치가 6600원으로 뚝 떨어진 셈이다. 화폐가치가 34% 평가절하되면서 인플레이션이, 그것도 정부 정책에 따라 인위적으로 일어난 유의미한 사건이다. 정부가 스스로 인플레이션을 조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평일에 대형마트 가기가 버거운 맞벌이 입장에서는 그렇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주택대출금을 못 갚는 '하우스 푸어'로 한국경제 골머리가 지끈거리기 일보 직전이다. 전반적인 경기가 어려워 소득이 정체되거나 실직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명목상 고정된 채무는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경제독해라는 책의 예제를 인용해보자. 만기 10년짜리 2억원의 주택담보 대출을 지고 있는 채무자의 소득이 5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줄었다고 치자. 연봉의 4년치였던 총 대출금이 5년치로 증가하게 된다. 부채부담이 25% 증가했다는 의미다.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돈의 실질 가치가 오르지만 통화의 순환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린다는데 웬 디플레이션? 아무리 돈을 많이 풀어놔도 불경기에는 소비가 준다. 이는 기업투자 감소와 제품가격 하락을 유발하고 재차 일자리 감소와 소비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금처럼 집값은 떨어지고 실질소득이 감소할 공산이 큰 환경 속에서 '돈'이 뿌려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뒤죽박죽이다. 골목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하에 서민들의 쌈짓돈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부동산 비관론을 부각시킨다. 집값 올라봐야 표심 잡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겠지만 결국 대출은 줄고 오히려 기존 부채는 청산된다. 대출감소와 부채청산은 통화량을 줄어들게 한다. 이는 돈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극심한 불경기 하에서라면 경제학자 어빙피셔의 주장대로 부채 증가 부담으로 이에 대한 청산이 시작되면 청산행위 자체가 부채를 키우는 '청산의 역설'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부채도 돈이니 빚부담은 다시 커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은 어떨까. 개인들이 끝까지 발을 빼지 못하고 용돈만 생겨도 다시 뛰어들 수 있는 서민형 재테크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따져야 할 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인투자자들은 현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하다.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중 어느 쪽으로 넘어갈 지 속칭 '깔딱고개'에 있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들은 기업 수익성에 대한 기대와 이해보다는 인기가 많은 종목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각종 테마주를 놓고 인기투표를 진행하고 있는 것과 진배 없다. 정부는 시장 활성화와 통제의 황금분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두려운 마음이 든다. 대선 정국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화투판에서 '광땡' 잡은 줄 알고 있는 후보들 일색이다. 국민을 위한다며 1790년 영국 의회가 했던대로 투기억제를 위해 왕으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회사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극단적 '버블법'이라도 내놓을 것 같으니 말이다.



박성호 증권부장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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