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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시각] 미네르바와 730억 바지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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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미교포 정진남(62)씨에게 5400만 달러(약 73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로이 피어슨 전 판사 사건에 대해 아직 기억하고 있다.

피어슨 전 판사는 정씨가 운영하는 세탁소의 '만족보장'이라는 광고 문구만 믿고 바지를 맡겼다며 자신이 결국 사기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피어슨 전 판사는 처음 산출한 손해액 1500달러에 그가 만족하지 못한 사항들을 일일이 곱하고, 여기에 바지 없이 지낸 날짜를 곱하고, 여기에 또 정씨 등 세탁소 주인 3인의 숫자를 곱한 뒤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덧붙여 6700만 달러나 요구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1300만 달러를 깎아줬다. 이렇게 해서 최종 손해배상액이 5400만 달러로 결정된 것이다.

2007년 재판부가 소송을 기각하자 많은 사람은 '정의와 상식의 승리'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바지 소송에서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얼토당토않은 사건이 2년 넘은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세한 법 아닌 상식을 잣대로 들이댈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지금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미네르바'라는 '블로거'의 구속을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네르바를 '금융 블로거'(financial blogger)로 표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실명을 거론하며 '일개 블로거'(a blogger)라고 소개했다.

사실 미네르바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불황으로 접어든 지난해 10월에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까지 정확히 예측해 언론은 물론 일반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미네르바의 예상은 경제 전문가들을 무안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검찰은 미네르바가 한 포털 사이트에서 한국의 경제위기를 부채질했다며 지난 8일 전기통신사업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지난해 12월 하순 정부에서 원ㆍ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려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미네르바의 글로 인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당국은 원화 안정 차원에서 20억 달러를 시장으로 긴급 방출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네르바가 정부에 20억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당국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증권사 출신의 50대 남성'으로 알려졌던 미네르바가 사실 '유학 경험 없는 전문대 출신의 무직 남성'이라고 밝혔다. 한 마디로 시민들이 '보잘것없는 백수'에게 휘둘렸다는 것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교육기관인 세계경영연구원에서 최근 CEO들을 상대로 '미네르바 구속 찬성 여부'에 대해 설문조사해본 결과 응답자의 6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 이유로 ▲익명성을 무기로 한 인터넷의 역기능(39%) ▲여론 호도로 국민 정서를 불안하게 만든 점(35%) ▲확실하지 않은 근거 때문(17%) ▲실제 시장에 나쁜 영향을 줬기 때문(6%)이 꼽혔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해 몰라서, 논거가 확실치 않음을 모르는 바보라서 미네르바에게 열광했던 걸까. 갈팡질팡하는, 투명하지 않은 당국의 정책 때문이 아니고?

'바보들의 상식'대로라면 바지 한 벌 값을 5400만 달러로 계산해 세탁소 주인에게 엄청난 정신적ㆍ금전적 피해까지 입힌 전직 판사, 불투명한 정책으로 일관한 당국자들이 구속돼야 마땅하다.

우리 바보들은 미네르바 사건이 공공정책에 대한 비판을 입막음하려는 정부의 어설픈 조치라는 것도 잘 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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