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 “ㅇㅇ업무 책임자 누구지? 이사님께 진행상황 이메일로 보내주길.” 직장인 유모 씨(30·여)는 휴가 중 부서 단체 톡방에 올라온 이모 부장의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해당 업무의 책임자가 바로 유 씨였던 것. 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 있던 유 씨는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꺼내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업무를 봐야했다. 그는 “분명 전날 해당 업무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고 왔다”며 “뻔히 책임자가 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업무 지시를 내린 부장 탓에 휴가를 스트레스로 시작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업무에 대한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부서 단체 카톡방은 휴가 중에도 나갈 수 없는 감옥이 돼버렸고, 해외여행 시에도 ‘로밍’은 필수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워라밸(Work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바람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 85%가 근무시간 외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에 찬성했고,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의 월급 중 8.7%를 반납할 의사가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대기업이 심야시간이나 휴일에 업무 목적의 카톡 금지 매뉴얼을 도입했다. 다만 보편화되지 않고 있는데다 단순 권고사항이라 위반한 경우에도 어떤 제재규정이 없어 사실상 달라진 점이 없는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젊은 사원들의 요구에 퇴근 후에 업무 연락을 금지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직원들의 직급이)차장 이상만 돼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며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차원에서 이행 여부를 따로 파악하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라도 이를 지키려는 부서가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직장인 개개인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지키고 나섰다. ‘세컨드폰(second phone)’, ‘세컨드 계정’이 등장한 것. 세컨드폰은 업무용과 개인용 핸드폰을 분리 사용해 근무시간 외의 연락을 물리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또 세컨드 계정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생활용 ‘비밀 계정’과 회사에 오픈하는 ‘공적 계정’을 따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리서치 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따르면 4명 중 1명 꼴로 세컨드 계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컨드폰을 쓰고 있다는 직장인 임모 씨(28·남)는 지난해 여름 휴가 당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화와 메신저 톡에 시달린 이후 업무용 폰을 장만했다. 휴가 기간을 포함한 모든 업무 외 시간의 연락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임 씨는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직장 상사나 동료의 업무 전화나 문자를 확인하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며 “휴가 때는 세컨드폰을 일부러 회사 책상에 두고 온다”고 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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