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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축록(逐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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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중국 고사에 '축록(逐鹿)'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슴을 쫓는다는 이 단어는 천하를 놓고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겨루고 쫓는다는 뜻의 각축(角逐)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왜 사슴이 천하의 패권을 의미했을까. 그 유래는 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회음후는 회음 출신의 한신을 말한다. 한고조 유방은 한신의 모반을 권했던 책사 괴통을 찾아내 직접 힐문을 하고 삶아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괴통은 이렇게 항변했다. “진나라가 망한 후 천하의 영웅들이 앞 다퉈 사슴을 쫓았지만 그 중 가장 지략이 뛰어나고 민첩한 폐하가 잡았습니다. 당시 신은 한신을 알고 폐하를 알지 못한 죄밖에 없습니다. 천하가 평정된 지금 축록의 건으로 죽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유방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괴통을 살려주었다.

1950년~1960년대까지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축록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정치권을 축록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축록이라는 표현은 정치권으로부터 멀어졌다. 천하의 패권을 다투기 위해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뛰어들어 겨룬다는 의미가 퇴색된 탓인지 모르겠다.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매표가 가능했던 시기였으니 오죽했을까.
온갖 부정선거로 얻은 권력은 부정부패를 낳게 마련이어서 사슴을 놓고 패권을 다툰다는 표현이 머쓱했을 것이다. 그리 따지면 선량(選良)이라는 표현도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뛰어난 인물을 뽑는다는 의미로 국회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니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축록과 관련한 고사성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축록자불고토(逐鹿者不顧?)’이다.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 곧 큰일을 꿈꾸는 자는 작은 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와 반대로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이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돌아보지 않는다. 큰 욕심을 내면 도리를 잃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은 벌써부터 채비가 한창이다. 출마를 고민하는 후보들에게 새삼 권하고 싶은 말이다. 당선에만 염두에 두고 크고 작은 일을 도외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슴의 눈망울로 지켜보던 유권자들이 언제든지 뿔을 앞세워 징치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완주 정치사회 담당 선임기자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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