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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오펜하이머 개봉이 불편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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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12개 도시를 꼽았어요. 아니, 일본인들에게 문화적 의미가 큰 교토를 제외한 11곳이요. 교토는 아내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하죠."


핵무기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온 한 대사다. 1945년 당시 일본과의 전쟁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작전을 총괄하고 있던 헨리 스팀슨 미 육군장관이 핵무기를 투하할 일본 도시들 중 교토를 제외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미지출처=오펜하이머 영화 포스터]

[이미지출처=오펜하이머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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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미군 작전참모들이 일본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도시인 교토를 초토화시켜야 일본이 곧바로 항복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스팀슨 장관은 끝내 교토 핵 투하 승인을 거부했다. 그는 실제로 교토를 개인적으로 좋아해 수차례 여행을 갔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미국 정부가 스팀슨 장관의 고집 하나로 교토에 핵을 투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교토는 미국이 핵 투하를 결정하기 전부터 미국 폭격기의 공습을 꽤 많이 받은 대도시 중 하나였다. 교토에는 당시 우라늄 추출과 입자가속기 등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시설을 갖춘 일본 최대 화학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시설들이 공습 목표가 됐다.


교토뿐만 아니라 도쿄와 다른 주요 대도시들도 미군 폭격기들이 이미 주요 시설들을 거의 다 파괴한 상황이라 굳이 핵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미국정부가 1945년 8월 당시 실제 핵을 투하하려던 목표지역들은 주로 후방지역의 중소도시들이었다. 이 지역들에는 민간업체를 가장해 숨어있던 일본군 군사시설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가미가제 특공대’라 불리는 자폭작전으로 7000대 이상의 전투기를 잃고 우수한 파일럿들도 모두 상실해 방공망이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최소한 일본 본토 방어가 가능한 수준의 전투기만 남았다해도 저렇게 미군이 손쉽게 핵 투하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패전의 역사들이 상기되다 보니 아무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직접 핵이 투하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 오펜하이머는 일본 네티즌들은 물론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핵이란 단어 자체에 민감한 시점인 데다, 일본 입장에선 패전기념일인 8월15일에 한국에서 개봉된 오펜하이머 영화는 일본 내 반미감정을 건드리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 내 대표적인 반핵 정치가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입장에서도 불편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는 바로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핵무기가 처음으로 떨어졌던 도시인 히로시마다. 기사다 가문은 히로시마 지역에서 3대 세습 정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문으로 일본 우파 내에서도 드물게 핵무기 개발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지난 5월 개최됐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굳이 히로시마에서 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내외적으로 비핵화, 평화를 강조하면서 자민당 내 일각에서 나오던 자체 방어용 핵무기 개발론을 경계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황들로 일본 내에서 오펜하이머가 정식 개봉이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저 할리우드 상업영화로만 치부하기에는 불편함의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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