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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칼럼]현실은 무한 복제되는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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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결국 '나'라는 정체성이 가장 중요

[김대식 칼럼]현실은 무한 복제되는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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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처음 상영된 영화 ‘매트릭스’는 25년 가까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계 클래식이다. 매트릭스 인기의 핵심은 아마도 -적어도 당시에는- 충격적인 전제에 있었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가 아닌, 초거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설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닌 컴퓨터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내 인생 자체가 시뮬레이션이고, 나의 모든 선택이 컴퓨터 코드로 이미 정해져 있다면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무엇일까?


물론 매트릭스의 설정은 단순한 상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이미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우리가 진짜 현실에 살고 있을 확률이 수 억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옥스포드 대학의 닉 보스트롬 교수는 이미 2003년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을까요?”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오리지널은 언제나 단 하나지만, 복제품과 시뮬레이션은 무한으로 가능하다.”

"복제품과 시뮬레이션, 무한으로 가능"

그럼 이제 이런 상상을 해보자. 아침 일찍 랜덤으로 집 앞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발견했다고 치는 거다. 아무 노력 없이, 우연의 결과로 발견한 그림이 하필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오리지널 모나리자일 확률은 거의 없다. 오리지널은 아마도 여전히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고, 우연히 오늘 아침 발견한 그림은 복제품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슷한 논리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아무 노력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현실,부모님과 환경을 선택한 적 없다. 그냥 태어나고 눈을 떴더니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무 노력 없이 우연의 결과로 얻게 된 현실이 하필 우주에 단 하나뿐인 진짜 현실일 확률은 0에 가깝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무한에 가깝게 많은 복제나 시뮬레이션 중 하나일 확률은 압도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김대식 칼럼]현실은 무한 복제되는 시뮬레이션? 원본보기 아이콘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구의 시뮬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일까? 인류는 이미 많은 시뮬레이션들을 만들고 있다. 100년, 1000년, 1만년 후 인류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물리학, 일기, 경제 시뮬레이션을 넘어 과거 인류에 대한 역사 시뮬레이션까지 만들어볼 수 있겠다.


과거 로마제국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몽골제국과 십자군전쟁의 역사, 그리고 20세기 반도체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특히 21세기 챗GPT와 생성형 인공지능의 역사는 우리 인류의 후손이 아닌, 21세기 생성형 인공지능으로부터 시작된 미래 초지능인공지능 기계들의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높겠다. 자신들의 기원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기계 역사의 핵심인 21세기를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증명도 부정도 불가능한 시뮬레이션 가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을까? 사실 보스트롬 교수의 가설은 단순한 철학적 주장이지 과학적 이론은 아니다. 과학적가설은 언제나 실험과 경험을 통해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가설은 증명도, 부정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어느 실험이나 증명 역시 시뮬레이션을 증명하려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신의 존재 보다, 신의 존재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 있다. 비슷하게 우리가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는지 여부 그 자체 보다도, 만약 현실이 시뮬레이션일 경우 삶과 인생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뮬레이션 속에선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겠다. 나는 결국 시뮬레이션 세상에서의 NPC(Non-Player Character), 그러니까 시뮬레이션 속 인조 캐릭터에 불과할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주인공이자 플레이어일까? 그리고 내가 플레이어라면, 나는 결국 수 만년 후 미래 인간일까? 아니면 수 만 년 전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초지능 인공지능일까?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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