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충청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여의도 정가를 떠도는 대표적 '격언'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선거 역사와 관련이 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부터 가장 최근인 2017년 대선까지 이어져온 징크스다. 충청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어김없이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영남과 호남이 양분해온 한국 정치의 역학 구도에서 충청의 '캐스팅 보드' 효과가 주목받은 이유다. 충청 민심이 대세 흐름을 따르게 되면서 '충청 1위=대선 승자'라는 등식이 형성됐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대세 흐름에 충청이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은 과거의 정치문법이다.
수도권을 제외할 때 '영남〉호남〉충청'의 지역인구 우열 구도는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충청(대전·세종·충남·충북) 인구는 553만3745명, 호남(광주·전남·전북) 인구는 511만8468명이다. 대전 인구는 광주보다 많고 충남 인구는 전남보다 많다. 게다가 34만명이 넘는 세종 인구는 시간이 갈수록 팽창하고 있다.
대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충청대망론'이다. 실제로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고(故)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중심으로 충청 정치인들은 대권 도전에 나섰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충청대망론 불씨를 살렸던 대표적 인물이다. 충청권 인사의 폭넓은 지지를 토대로 본선 경쟁력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대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3선 충남지사를 지낸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도 대선 출마를 준비했지만 뜻을 접어야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자신의 문제로 현실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충청대망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다. 충북 음성 출신인 그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토대로 청와대 문턱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충청권 출신 중 주목받는 현직 인사로는 박병석 국회의장,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양승조 충남지사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의 충청대망론이 인물 중심의 정치 프레임이었다면 이제는 키워드에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가에 '또 하나의 충청대망론'이 상륙했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몰고 온 정치 바람이다.
여당이 행정수도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이를 지켜보는 야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치 기세(氣勢) 싸움을 고려할 때 여당이 주도하는 페이스에 맞춰줄 이유는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서울 집값 폭락'이라는 공포를 자극하며 수도 이전 반대 노선을 분명히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통합당 지도부는 함구령을 내렸지만 충청권을 중심으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합당 대전시당은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발전, 지방분권,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 후폭풍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충청권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이다.
정치 프레임의 관점으로 볼 때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카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상대 진영의 균열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여당의 '꽃놀이패'가 될 것이란 진단은 섣부르다.
여당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실행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개헌에 대한 부담도 해소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탄력이 붙었을 때 서울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카드는 2022년 대선 판도의 묘수(妙手)가 될까, 아니면 악수(惡手)가 될까. 분명한 것은 '중원(中原)'에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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