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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무궁화꽃과 핵봉인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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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정치부장]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던 놀이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가 있다. 술래는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기대 눈을 가린 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 직후 뒤를 돌아본다.

술래가 아닌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술래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동작을 멈추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술래의 눈에 걸리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되는 놀이다.
문단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김진명이라는 신예작가가 1993년 동명의 소설을 발표해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김진명 작가의 이 소설은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아 핵무기 개발이라는 소재를 동원했다.

소설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파격적인 줄거리를 담았다. 그리고 한국을 침공한 일본을 향해 남북이 공동 개발한 핵미사일을 발사해서 응징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소재나 결말이 자극적인데다 핵무장과 일본에 대한 응징이라는 부분이 교묘하게 국민정서를 자극한 측면이 있다. 그런 요소들로 인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핵봉인' 해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 나아가 우리 군의 자체적인 핵무장론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정부의 공식입장은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논란은 쉽사리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이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 현실로 돌아온다고 해서 허용될 수가 없다. 냉정하게 돌이켜 볼 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전략이다. 북한 정권을 보장받고 북미 평화협정체결을 맺기 위한 일환이다.

북한이 잇달아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알래스카나 괌이 직접 위협을 받는 일이 벌어지자 미국도 당황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자국의 본토를 담보로 한국을 핵우산으로 방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회의론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허용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의 배경이다.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대북제재에 미적거리는 중국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을 움직이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지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는 인식이다.

과연 미국의 현실 판단에 따라 한반도의 핵봉인이 해제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핵추진 잠수함 도입만 해도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 현재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 국가에 불과하다. 인도를 제외하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다.

상임이사국은 알다시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다. 이들 승전국들이 과연 핵 헤게모니를 포기하고 한국과 일본에게 핵봉인을 풀어줄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려되는 점은 핵무장론이 자칫 군국주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 아베 정부의 군국주의 부활 의도를 성토해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친 배경에도 사실은 일본을 핵무기로 패망시켰다는 통쾌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통쾌함을 느낀 독자들의 속내에 군국주의를 향한 선망의 시각이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것은 아닐까. 최근의 핵무장론도 그런 점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동북아시아는 중국, 러시아, 북한까지 포함해 세계 초유의 핵무기 경연장이 될 것이다. 그 혹독한 여파는 누가 감당할 것인지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완주 정치부장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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