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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모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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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새벽이 왔다면서 닭 모가지는 왜 비트나."

1993년 당시 박철언 국민당 의원이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라는 정덕진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한 말이다. 혐의를 부인하면서 그의 정적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했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 유명한 말을 제대로 비튼 것이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의 이 말은 단순히 당시 사건조사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 3당합당, 아니 흔히 야합으로 불리는 정치 격변 이후 1992년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피튀기는 경쟁 끝에 YS에게 밀린 데다 YS 집권후 사정의 칼이 이른바 '6공(공화국) 황태자'라는 자신을 겨누었으니 박 전 의원 입장에서는 '표적수사'라 항변·강변할 만도 하다. 그런 게 권력 아니던가.

당시 박 전 의원을 잡은(?) 사람은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 권력의 핵심을 건드리는 수사로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던 그였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유죄)·항고심(무죄)에 이어 상고심을 남겨두고 있는 데다 지난 대선 때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섰다가 과거 대학시절 이른바 '돼지 흥분제' 에피소드 때문에 빛이 바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또 인생이다.

흔히 권력은 칼에 비유된다. 잘 드는 칼은 좋은 옷을 재단하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며, 잔가지를 쳐서 풍족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만든다. 환부만 콕 집어서 도려낸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메스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휘두른 칼은 흉기 그 자체다. 우리네 같은 장삼이사야 칼이 아니라 칼집만 보더라도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던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었던 검찰에 개혁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등 일부 '칼잡이'들의 비위는 그간 숱하게 나온 검찰 부패의 단편들이다. 그때마다 나온 '셀프개혁'은 시늉에 그쳤다. 최근 검찰 지휘부의 '돈봉투 만찬'은 검찰 스스로 개혁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비위들이 켜켜이 쌓일수록 개혁의 당위성은 커질 뿐이다.

지난주 검찰 고위직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인적쇄신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좌천인사를 받은 대상자들은 검찰을 떠난다고 한다. 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못이겨 용퇴를 결심한 것인데 속으로 '모가지를 왜 비트나'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적폐, 전관(前官)을 꿈꾸면서.

인적쇄신은 개혁의 기본. 조직문화와 관행을 바꾸지 않고서는 진정한 개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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