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3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가능했다. 한국에서 만든 옷을 중국의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다. 정보통신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이를 좁혀줬다. 생산자는 시장이, 소비자는 선택이 넓어졌다. 그래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은 분명하다. 생산자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다품종ㆍ소량생산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소품종ㆍ대량생산에 익숙하다. 품종마다 생산설비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중소기업에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결국, 중소기업은 다품종ㆍ대량생산으로 대처해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대량생산을 소화할 소비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소비자를 확보하는 것, 즉 판로가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이다. 한국 중소기업의 마케팅 혁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다. 중소기업의 판매가 납품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납품도 계약이나 경쟁보다 관습과 관행에 의존했다. 그래서 생산만 할 뿐 판매는 그리 중요한 영역이 아니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소기업 판로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판로는 소비 행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분석하고, 전략을 도출하고, 중소기업에 전달하고, 제품을 다시 소비자에 전달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과정마다 칸막이를 두고 지원을 확대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또한,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은 확실해졌고, 글로벌 시장의 소비자를 찾아야 생존할 수 있다. 이를 수출과 국내 판로라는 산업화 시대의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면 실패확률이 높다. 글로벌 소비자의 행태를 읽어야 하는데 아직도 국내 홈쇼핑 채널만 고집할 수 없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할수록 공공구매를 늘려달라는 중소기업의 아우성을 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판로지원은 글로벌 시장의 길을 뚫어주는 '개척자' 역할을 해야 한다. 국내외 판로를 하나로 묶어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하며, 이에 맞는 기관의 탄생이 절실하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경험이 있다.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다. 모두가 불안해했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aT)가 구축자와 개척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농수산물의 국내 판로를 구축했고, 지금은 수출시장의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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