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거장 타계 26주기, 냉전시대 '쇼스타코비치 곡 연주 빼달라'는 주문 거부하고
레너드 번스타인.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 봤을 이름입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꼽히죠. 그런데 알고 계시나요?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받아 지휘봉을 놓아야 했고 한때 여권마저 발급되지 않았다는 사실.
번스타인은 세계적 지휘자였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음악 활동을 멈춰야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1950~60년대 냉전시대와 당시 미국 사회에 몰아쳤던 매카시즘 광풍 때문입니다. 진보적인 정치인을 후원하고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번스타인은 좌파라는 이유로 1950년 미국 국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결국 1951년 뉴욕 필 지휘자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 시기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지휘대에 설 수도, 작품을 발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진술서에 서명한 뒤에야 음악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내한공연과 관련해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1979년 번스타인은 뉴욕 필을 이끌고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레퍼토리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있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소련 작곡가의 곡이라는 이유로 번스타인에게 빼달라고 요청했죠. 하지만 번스타인은 이를 묵살하고 예정대로 연주했다고 합니다. 이 곡이 우리나라에서 연주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경희 디자이너 moda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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