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룡(潛龍)들이 앞다투며 성장담론을 꺼내들고 있다. 저성장과 이에 따른 양극화가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각 주자들은 독자적 해법을 내세우며 '성장'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경쟁하는 모양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대선주자들은 최근 국민성장·공정성장·혁신성장 등 경제담론을 본격적으로 전면화 하고 있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도 자신만의 경제담론을 통해 이니셔티브를 확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7·4·7(매년 7%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강국)과 '국민성공시대'라는 정책·캐치프레이즈로 승리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경제민주화·창조경제로 보수색채를 탈각하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서는 '성장'이 다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각종 감세정책에 따른 낙수효과(落水效果)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저성장으로 인해 양극화와 격차 등이 고착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박승(80)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은 "산업화 시대에 정부는 대기업에 온갖 특혜와 소득보전 등을 해 주고 가계를 쥐어짰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며 "수출엔진이 꺼진 상황에서, 수출로 끌어가는 (경제)엔진을 민간 소비로 끌어가는 엔진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내 문 전 대표의 최대 경쟁자인 안 전 대표는 공정성장론을 펴고 있다. 공정성장은 대·중소기업이 공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시장경제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성장-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기능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정성장 3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최근 들어서는 부쩍 중산층 복원과 창업지원도 강조하고 나섰다. 공정기반 조성에 이어 성장의 목표와 방법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최근 각종 강연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저와 국민의당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중산층 복원이다", "창업국가가 돼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의원은 문·안 전 대표의 성장론을 '분배론'으로 규정하면서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유 의원은 우선 경제성장의 3대요소 중 총요소생산성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노동부문에서의 생산성 혁신은 한계에 다다른 만큼, 정치권 차원에서 과학·기술혁신, 연구·개발(R&D), 창업금융 등 총요소생산성의 개선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유 의원은 '재벌개혁'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혁신성장이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와 다르다는 점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혁신기업은 현재처럼 재벌이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재벌이 시장지배하며 골목상권까지 침해하는 구조로는 혁신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잠룡들 외에도 다양한 성장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최근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생산성 주도 성장론'을 설파하며 노동·산업·교육분야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