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 - 권정생 타계 9주기에 떠올려보는,미완성작 '한티재 하늘'의 사연
골목길의 담 밑의 강아지똥은 자신이 더럽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민들레 싹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꼭 필요한 쓰임을 찾아 민들레의 뿌리로 스며든다. 그렇게 강아지똥이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얘기는 쉬 쓸모없다 여기는 강아지똥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천대 받아도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진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권정생 선생은 이후에도 '몽실언니'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권정생이 아이들의 이야기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 역사 속 못 배우고 굶주린 '강아지똥'들이 주인공인 대하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작가가 10권쯤 쓰려고 했던 이 대하소설은 두 권만 세상에 나왔다.
부천의 개척교회인 민들레교회의 주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 소설은 경북 안동 한티재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화전민으로 살며 1891년 구한말부터 일제치하인 1937년까지 역사의 격동기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저마다 기구하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지주와 일본군에게 억압 받으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고 농민군으로, 의병으로 맞서 싸운다.
권정생은 죽는 날까지 이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했지만 작가가 계속 쓰려고 했던 해방 이후 민중의 삶은 세상에 선을 보이지 못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를 잘도 헤쳐 온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생전 한 인터뷰에서 전한 바 있다.
'강아지똥'을 읽고 자란 이들은 이제 40대가 되고 기성세대가 됐다. 하지만 과거 강아지똥이라고 불리던 존재는 오늘날 흙수저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여전히 권정생의 응원이 필요한 시대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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