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남해금산'
바위는 그냥 바위일 뿐이다. 하지만 바위를 깎아 조각을 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한 여자를 볼 수 있다. 그가 자신이 보는 여자만 남겨두고 겉의 돌들을 깎아내면 바위는 여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위를 깎아내지 않은 채 여자를 바라보기만 한다면 여자는 바위 안에서 포즈를 바꿔가며 늘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형상을 아직 빚지 않았으니 그 안에서는 자유로운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바위를 벗어나는 순간 형상을 눈에 보이게 빚을 수는 없어진다. 여자는 바위 속에서 수천수만의 형상과 움직임을 보이지만 바위 밖을 나올 수 없는 수형자이다.
바위 속의 여인을 발견한 시인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빛에 견딜 수 없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또한 바위가 되었으니 바위 속은 달콤한 안방이다. 하지만 비좁은 안방에서 서로 지지고 볶다 보니 미움도 생기고 원망도 돋아났다. 여자는 울면서 그만 바위를 떠나버렸다. 여자가 떠난 바위 속에서 남자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라진 여자를 묵묵히 생각하며 단단하고 캄캄한 속에서 내내 견딜 뿐이다. 단순하고 강렬한 사랑의 이미지가 젊은 내겐 왜 더할 나위 없는 리얼리티로 느껴졌던가.
보리암에서 남해바다를 내려다보며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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