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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와 이완구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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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 이후 불거진 일련의 파문이 이완구 국무총리를 향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고 죽음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야당은 이 총리를 향해 해임건의안 카드를 꺼내들며 연일 자진사퇴를 압박중이다.

이 총리는 그동안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속 인물인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와 닮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드라마를 봤던 사람들 중에는 언더우드와 현실 한국 정치인 가운데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를 떠올린 인물이 의외로 많다. 이 총리가 한창 잘 나갔을 때에는 닮은 외모나 원내대표 출신 정치인 등이 이유였지만, 이제는 두 인물의 정치 역정이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드라마 내용이 등장. 스포일러 주의)
◆2인자로 가는 길 = 실제 이 총리의 최근 모습은 언더우드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다. 집권여당 원내총무였던 이 총리는 원내대표 임기를 마저 채우지 않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총리에 올랐다. 드라마 속 언더우드워드 역시 집권 민주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한 뒤 위로는 미국 대통령뿐인 부통령직에 오른다.

흥미로운 건 언더우드는 선거를 통해 부통령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통령이었던 인물이 사임하면서 갑작스레 그가 부통령직을 맡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선거에서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선거를 치른다.) 언더우드는 부통령 후보로 선거를 치른 게 아니라,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렀던 부통령을 관두도록 유도해 부통령이 됐다.

이 총리가 국무총리에 오른 과정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총리는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였던 정홍원 총리의 후임자 1순위로 거론된 인물은 아니었다.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인사청문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무너진 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물론 드라마 속 언더우드는 부통령이 되기 위해 일종의 작전을 짜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인 반면 문창극·안대희 후보자는 이완구 당시 원내대표가 아닌 언론과 야당의 압박 속에 물러났다는 차이가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총리가 두 사람의 낙마로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는 점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청와대가 내정 사실을 밝혔을 당시에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신하다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문 후보가 진짜 주목을 받은 부분은 그가 충청북도 청주 출신의 충청권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영남(여당)과 호남(야당)으로 정치지형이 나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충청권 출신은 캐스팅 보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문 후보가 실제 총리가 됐다면 여당에는 충청을 대변하는 대형 정치인이 하나 추가 되는 셈이었다. 이는 역시 충청권 맹주가 되기 위해 애써왔던 이 총리에게는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대쪽 이미지를 가졌던 안대희 후보 역시 총리가 됐다면 여권내 위협적인 정치인이 됐을 것이다. 안 후보가 전관예우 등의 파문을 딛고 총리가 됐다면 그는 이 총리가 시도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서 고강도 사정을 이끌었을 것이다. 과거 검사로서 화려한 명성을 얻었던 그였기에 부패와의 전쟁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다. 만약 상황이 이리 됐다면 그는 여권의 대형 잠룡이 됐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다.

안대희·문창극 모두 총리가 임명되지 못해 이 두 사람을 인사청문회에 통과시키기에 누구보다 노력했어야 했던 이 총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두 명의 후보를 연달아 냈다면 이 둘을 인사청문회에 살아남게 만들어야 할 책임의 상당부분은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이 총리에게 있었다. 그는 여당의 원내 최고사령탑으로 야당과의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흐트러진 여당을 단속하는 일을 맡아야 했다. 그게 바로 원내대표로서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의 후보를 언론과 야당의 공세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음 총리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정치와 언론 = 언더우드와 이 총리는 언론관과 대응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교묘하게 닮아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에서 가장 부각되는 부분은 여당 원내대표인 언더우드가 기자와 기사거래에 나서가나 기사를 통한 여론조작으로 정치적 성과를 거두는 대목이다. 법안 내용의 사전 유출을 통해 논의 흐름을 바꾼다거나 장관 하마평 등을 이용해 대통령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 등은 모두 언더우드는 친밀한 기자를 활용해 이룰 수 있었다. 기자는 언더우드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언더우드는 사실 기자를 철저히 이용했을 뿐이다.

이 총리의 언론관 문제는 총리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사실 이 총리는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총리 지명 초기에 덕담을 건네는 야당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 총리 스스로 수십년간의 공직 생활을 통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인사청문회 국면이 들어서자 병역·재산·과거 경력 등 인사청문회에서 지적되는 거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졌다. 그는 우호적 여론 조성 등을 위해 당시 자신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인사청문회 내내 시끄럽게 만든 언론관의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언론사 간부에 연락해 보도를 막았다", "지가 죽는 것도 몰라,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 등 언론에 대한 압력부터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 줬다" 등 회유에 이르기까지 비뚤어진 언론관을 젊은 기자들에게 무용담처럼 말했다.

이 총리가 실제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반대로 기자들을 회유를 통해 교수를 만들었는지는 확인이 안됐다. 때문에 이 부분을 제외하고 언더우드와 이 총리를 비교하면 한 가지 차이점이 남았다. 언더우드는 자신이 만든 여론조작에 대해 무겁게 입을 다문 반면, 이 총리는 이를 젊은 기자들에게 이를 무용담처럼 말했다는 경솔함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정치와 돈 =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2에서 핵심 인물은 레이먼드 터스크(제럴드 맥라니 분)다. 개럿 워커(마이클 길 분) 미국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업가로 나오는 그는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위해 미중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물로 등장한다. 터스크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기업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는 드라마 속 민주당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워커 대통령의 오랜 지기로 대통령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숨겨진 조언자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언더우드는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터스크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터스크는 정치자금 문제를 제기하며 오히려 언더우드를 위협했다. 이에 언더우드는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특별검사를 둬서 정치권 전반에 걸쳐 조사를 하게 한 뒤, 워커 대통령과 터스크를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두 사람 모두를 파멸시킨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 터스크가 있다면 우리 현실에는 성 전 회장이 있다. 성 전 회장이 터스크와 꼭닮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기업인이라는 점은 똑같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이 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언론관 등으로 야당의 맹공에 처했을 때 충청권에 수천개의 현수막을 걸어 충청권의 민심을 자극해 총리 임명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성 전 회장은 정치권 인사들에 자금과 제공하는 한편 충청포럼 등을 통해 방대한 인맥을 관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죽음 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올해 자신의 성공불융자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데에 이 총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은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두고서 이 총리가 반기문 사무총장과 자신이 가까운 것 때문이라고 여겼다. 성 전 회장이 또 다른 충청권 잠룡인 반 총장을 지원하자 이 총리가 보복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자살과 메모, 자살전 인터뷰는 성 전 회장 뿐 아니라 이 총리까지 곤경에 빠뜨렸다.

◆최고 권력으로 = 언더우드는 개럿 대통령이 사임을 통해 선거 한번 치르지 않은 채 미국 대통령이 된다.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이다. 그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한계와 인기 낮은 정치인의 한계에 직면한다. 에드워드는 기존 민주당의 복지정책의 대전환을 내세웠지만, 당으로부터 대선 불출마 선언을 요구 받았다. 그가 재선에 성공해 진정한 최고 권력이 되는지는 아직 방송에 나오지 않은 채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의 자살 이전만 해도 큰 꿈을 꿨을 것이다. 만신창이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을 때 그의 정치적 부상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 했을 때 그는 충청권 대표 정치인 타이틀 뿐 아니라 여권 차기 대선주자 2위를 차지했다.(1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였다.) 그는 취임 50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직책을 저의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한다"며 대권 주자설을 부인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됐다. (누군가가 대권 불출마를 시사하는 말을 한다면, 그 전제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가 부패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충청권 대표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굳혔다면, 영남+충청 이라는 대선 필승 공식으로 그의 불출마 입장과는 상관없이 그는 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성 전 회장 파문은 그를 수렁에 빠뜨렸다.

최근 불거진 성완종 리스트는 크게 3가지 돈의 방향을 가리킨다. 첫째는 2013년 4·24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이 총리에게 선거자금으로 성 전 회장이 비타500 박스에 3000만원을 넣어 줬다는 것이다. 둘째는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성 전 회장이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의 측근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셋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측근에게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흐름은 첫번째와 두번째에 집중돼 있다. 이 총리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그에게 살길이 있을까. 언더우드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라면 분명 세번째 돈의 방향을 부각시켜 살길을 모색하며 반전을 꾀하지 않았을까?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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